’서방의 동상이몽?’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와중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생일축하 파티를 열고 포옹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포옹을 하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 출처는 슈투트가르터 차이퉁.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저녁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수포프궁에서 70세 생일 축하 자리를 가졌다.
슈뢰더 총리가 이날 유수포프궁 계단 앞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푸틴 대통령과 부둥켜안은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됐고 독일 언론 등에 일제히 보도됐다.
28일은 공교롭게도 미국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최고경영자(CEO) 등에 추가 제재를 단행한 날이었다.
중도진보 사회민주당(SPD) 출신으로 1998년∼2005년 총리를 지낸 슈뢰더는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으로 재임한 푸틴과 워낙에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재직 당시 러시아산 가스를 서유럽으로 공급하는 ‘북유럽가스관(NEGP·노드스트림)’ 건설 협정을 푸틴과 체결했다.
퇴임 이후에는 해당 가스관 운영을 위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과 독일이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의 감독위원회 의장이 돼 구설에 올랐다. 이날 생일 축하 행사도 회사 측에서 연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사진이 공개되자 독일 언론과 정계는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기독교민주당(CDU)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꾸리고 있으며, 독일이 맹주 노릇을 하는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최근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처신은 더욱 문제가 됐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으로 활동하던 독일인 3명은 아직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민병대에게 억류된 상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슈뢰더 총리가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 친구 푸틴을 좀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다”고 꼬집었다.
집권연정의 한 인사는 슈뢰더 전 총리의 행동이 “독일 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노선으로 기운 미국과, 러시아와의 에너지 의존 관계를 고려하는 유럽 간 ‘동상이몽’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미국과 유럽의 분열상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가장 생생한 은유”라고 짚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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