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소동 속 총격으로 2명 부상
미국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조지아주가 싸라기눈 예보에 말 그대로 ‘초비상’ 상황이다.공화당 소속의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는 10일(현지시간) 낮 주 159개 카운티 가운데 45개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재해 관계 기관에 눈 피해 방지에 전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주의 수도인 애틀랜타 북부 지역에 1인치(2.5㎝) 가량의 눈이 올지 모른다는 기상청 발표가 나온 직후에 이뤄졌다. 오는 13일까지 곳에 따라 최대 4인치(10㎝)의 눈이 올 수 있다는 예보도 나왔다.
그러자 대형 마트에는 빵과 우유, 휴지 등 생활 필수품을 사재기하려는 인파가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한인 밀집 지역인 귀넷카운티 로런스빌의 크로거 매장에는 시비를 벌이던 고객들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다쳤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주정부의 움직임은 비상계엄 상황을 방불케 했다. 각급 공립학교에는 12일까지 휴교령이 내려졌고, TV와 라디오는 기상특보 체제로 전환됐다.
주민 휴대전화에 휴교령 등 비상 조치를 알리는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고속도로 진입로에는 제설 차량이 속속 출동했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호들갑을 떤 것은 지난달 말 애틀랜타 일원에 내린 눈으로 큰 피해를 본 탓이다.
한겨울에도 온화한 날씨 때문에 제설장비가 부족한 애틀랜타는 당시 2인치(5㎝)도 안 되는 적은 눈에 도시 전체가 사흘간 마비되는 어처구니 없는 재난 사태를 겪었다.
세계 이용객수 1위인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선 여객기가 발이 묶여 수천 편이 결항됐고 애틀랜타 근처 기아차 공장은 이틀간 가동 중단으로 막대한 생산 차질을 빚었다.
눈 사태로 애틀랜타는 “미국에서 가장 한심한 국제도시”란 낙인이 찍혔다. 이는 ‘남부의 대표’라는 조지아 주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기면서 공화당이 득세하는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연방상원의원 후보로 누가 나서더라도 민주당의 여성 후보인 미셸 넌에게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 공화당을 공황에 빠트렸다.
조지아주에서 공화당은 주정부 권력과 함께 의회 의석의 3분의 2 가량을 점하는 절대 다수당이다.
싸라기눈 예보에 공화당이 이처럼 기민하게 행동하는 것도 민심의 변화를 두려워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화당에서 가장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은 딜 주지사다.
재선을 노리는 그는 정초 여론조사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제이슨 카터(민주) 주 상원의원보다 지지율이 최대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 느긋한 상황이었으나, 애틀랜타를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든 장본인으로 몰리면서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됐다.
CNN 등 주요 언론은 “딜 주지사가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일찍 첫 시험 시간이 찾아왔다”며 공화당이 이번 싸라기눈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그들의 정치 운명을 가를 중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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