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목”

“이 시대,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목”

입력 2013-05-20 00:00
수정 201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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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예술의전당 무대 올린 연극연출가 고선웅

“난 엄숙하고 거룩한 것을 정말 싫어해요. 그건 연극을 어렵게 하는 것이죠.” 1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발레연습실. 새 연극 ‘부활’ 연습을 한창 진행하다가 잠시 짬을 낸 연극연출가 고선웅에게 “이번에도 고선웅 식인가”라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에 명랑하게 접근하고, ‘리어외전’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우스꽝스러운 노래와 춤을 섞어 ‘오락 비극’으로 그려낸 그만의 철학이다.

연극 ‘부활’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인 서범석(왼쪽)과 예지원이 선(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예술의전당 제공
연극 ‘부활’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인 서범석(왼쪽)과 예지원이 선(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예술의전당 제공
새달 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오르는 연극 ‘부활’도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톨스토이 동명 소설의 러시아 각색본을 그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내용은 원작대로다. 러시아 귀족 네흘류도프(서범석)가 배심원으로 참여한 재판에서 살인절도 혐의를 받은 카츄샤(예지원)를 만난다. 그가 청년 시절 탐하고 버린 여인이다. 순수한 카츄샤가 타락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것을 알게 된 네흘류도프는 카츄샤를 구제하고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고행을 하면서 순수한 인간으로 회귀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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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극연출가
고선웅 연극연출가
고 연출가는 다른 결말을 찾거나 인물을 재설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소설의 배경이 된 제정 러시아 말기에 대한 명시는 없다.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배경은 과감하게 버렸다. 대신 러시아 귀족 사이에 뿌리 깊은 선민사상과 불합리한 사회구조 등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점과 원작이 던지는 메시지는 살렸다. 인간의 실체에 대한 고찰과 선(善)을 향한 삶의 성찰, 인간의 도덕성 회복, 그 전반에 깔린 사랑 등으로 점철된 ‘톨스토이즘’이다. “이 시대, 가진 자들의 역할과 의무를 생각하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목했다”는 고 연출가는 “이전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조용하게 네흘류도프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잽과 훅, 스트레이트를 번갈아 날리면서 끌고 간다”고 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법정에서 일어났을 때 말했어야 했어. 큰 소리로.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저 여자를 창녀로 만들었습니다.” 네흘류도프가 이렇게 절규하면서 파혼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약혼녀 미시는 능청스러운 몸짓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카츄샤와 네흘류도프가 만나는 유치장 면회실 장면에서는 면회자와 수감자들이 노래와 춤으로 자연의 순리를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가 제안하는 감상법은 명료하다. “작품을 보는 순간에는 즐겁게, 작품이 품은 메시지는 그 이후에 곱씹을 것”이다.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 기념공연인 ‘토월 연극시리즈’로 선보이는 ‘부활’은 재개관한 CJ토월극장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한다. 무대는 안쪽으로 30m나 깊숙이 들어가고 턴테이블 한쪽 끝에는 7m 높이의 언덕이 세워졌다. 인물들은 연신 오르락내리락, 굴러떨어지거나 미끄러진다. 인물들이 넘나들게 만든 무대 위의 요철에도 연출가의 의도가 넘겨짚힌다. 삶의 고뇌와 고난, 부활을 상징하는 장치다. 여기에 진지하게 무대를 붙들어매는 서범석, 낭랑한 음색의 예지원, 경기도립극단의 간판배우 이승철, 발성 좋은 문현주가 가세했다. 2만~4만원. (02)580-130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2013-05-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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