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한국은 언제나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나라죠. 관객들이 음악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또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쏟는 모습과 헌신에 존경과 감탄이 나옵니다. 공연장에 들어가 보시면 바로 느끼실 수 있지 않나요?”15년 만에 한국 찾는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포고렐리치 홈페이지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앞서 캐나다에서 열린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포고렐리치는 이 대회에도 참가하며 우승 후보로 점쳐졌다. 당시 22세 청년 포고렐리치는 심사위원과 관객 모두 들어보지 못한 쇼팽을 연주했다.
20대 때의 이보 포고렐리치. 포고렐리치 홈페이지
이런 일화가 보여주듯 포고렐리치는 늘 호평과 혹평이 갈리는 연주자였다. 누군가는 그를 ‘천재’라고 불렀고, 다른 누군가는 ‘괴짜’로 정의했다. 그러나 정작 포고렐리치는 세간의 평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대로 ‘유니크’(특별함)하다. 표현 방식을 선택할 자유는 공평하게도 모두에게 있다”면서 “나는 수십 년 전부터 내 공연 리뷰 읽기를 그만뒀다.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멀리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아노와 음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아내 일리아 케제라드제를 향한 사랑은 그가 계속 피아노를 칠 수 있는 힘이 됐다. 포고렐리치는 1980년 스승이던 21살 연상 케제라드제와 결혼했으나, 1996년 암으로 아내를 잃고 2000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깊은 우울증에 빠져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특히 아내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나은 피아니스트를 들은 적도, 알게 된 적도 없다”며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여전한 사랑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15년 만에 한국 찾는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포고렐리치 홈페이지
“이번 연주회를 통해 저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고,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젊은 관객들은 제 음악세계만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나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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