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의 ‘파울플레이’…경쟁사 비방에 대학생 이용
KT&G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 ‘상상유니브’를 통해 경쟁사를 비방하는 행사를 후원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27일 연합뉴스TV 보도에 따르면 15일 대전 배재대 동아리 사무실에서 ‘대전권 대학 총동아리연합회’라는 이름의 단체 소속 대학생 30여명이 모여 최근 담뱃값을 잇따라 인상한 외국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BAT, JIT를 규탄하는 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연합뉴스TV 기획취재팀의 취재결과 이 대회는 KT&G가 비용을 지원한 행사로 밝혀졌다.
KT&G와 참여 학생들에 따르면 이 규탄대회에 쓰인 현수막 제작 비용과 식대 등은 KT&G가 부담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목원대 동아리연합회 A(24)씨는 “현수막 비용을 KT&G쪽에서 지원을 해줬다”며 “하지만 직접적인 금전 거래는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평소에 KT&G 직원과 ‘형동생’으로 호칭하면서 밥 같은 것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규탄대회에 참석한 학생의 일부는 KT&G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문화예술 시설인 상상마당의 강좌나 공연 할인혜택을 받았다.
주최 단체도 이번 규탄대회를 위해 급조됐다.
규탄대회에 간여한 배재대 B(23)씨는 “예전에 있던 단체는 아니고 이번 규탄대회를 계기로 모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체엔 배재대, 한밭대, 목원대 등 대전 지역 3개 학교만 참여했다.
KT&G는 차후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현수막에 ‘담배’라는 문구를 넣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실제 규탄대회에 사용된 현수막 문구는 ‘글로벌 다국적기업의 현실을 무시한 가격 인상을 규탄한다’였지만 성명 내용은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학생들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식음료, 담배 등 다국적 기업 전체의 가격 인상에 대해 규탄하겠다며 현수막 제작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먼저 요청해 응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고 연합뉴스TV가 전했다.
그러나 A씨는 “(경쟁사가) 담뱃값을 인상할 때 항상 KT&G 측과 거래를 많이 했으며, 그러던 중 이번 대회에 (KT&G와) 같이 참여하게 됐다”고 말해 이번 일이 담배업계에 국한돼 수차례에 걸쳐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광주 호남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KT&G가 운영하는 대학생 단체인 상상프렌즈 소속 학생이 이달 중순 총학생회 명의를 도용해 호남대 캠퍼스 내에 필립모리스 ‘말버러’의 가격 인상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총학생회 임원에게 발견돼 철거됐다.
KT&G의 대학생을 동원한 경쟁사 비방이 전국에 걸쳐 다발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상상프렌즈는 KT&G가 2년 전부터 모집하고 있는 대학생 봉사ㆍ문화단체로 ‘스펙’(취업을 위한 이력)을 쌓으려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다른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호남대 총학생회 간부 C씨는 “총학생회와 관계없는 현수막을 거는 학생들을 목격해 항의하고 철거했다”며 “소속을 확인하니 호남대 학생은 아니었고 KT&G의 상상프렌즈 소속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TV에 따르면 KT&G 관계자는 “호남대 사건의 경우 해당 지역 상상프렌즈 지부가 지난해 12월 활동이 끝나 직접 관련은 없다고 보고 있다”며 “각종 대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일종의 ‘과잉 충성’을 한 결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KT&G는 “회사가 대학생을 사주하거나 악용할 의도는 절대 없었다”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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