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금융권 인사는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결사항전을 결심한 데는 (회장후보추천위원인) 사외이사들의 지지를 얻어 정정당당하게 회장으로 뽑혔다는 자존심도 크게 작용했다”면서 “정권이나 현직 모피아(재무부+마피아)들에게 빚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함이 더 컸던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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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전 회장은 행정고시 20회로 정통 모피아로 분류된다. 자신을 ‘차원이 다른 모피아’로 생각하는 임 전 회장은 이번 사태를 ‘서로 다른 줄을 잡고 내려온 두 개의 낙하산이 부딪친 결과’라는 세간의 해석에 몹시 불쾌해한다. 하지만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정권과 연관이 없었다면 회장에게 그렇게 강하게 반기를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19일 서울 중구 명동 KB지주 본사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후임 회장 인선 절차 등을 논의했다. 경영 공백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빨리 인선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중순까지 최종 후보 1명을 추려 오는 11월 14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계획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한 모피아는 “KB사태의 출발점은 정치권에서 다른 사람을 심기 위해 (임 전 회장을) 흔든 데 있다”면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임 전 회장) 자신도 모피아를 배경으로 그 자리에 앉은 만큼 후배(신제윤 금융위원장)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비켜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낙하산 윤리’라는 희화화된 표현 밑바닥에는 낙하산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깊숙이 배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눈먼 떡고물(주인 없는 금융사 수장 자리)을 먹으려는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이런 인식과 행태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KB사태 재발을 막기 어렵다”면서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차기 회장 인선 작업에) 일절 입김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KB회장 후임 인선이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국내 금융지주사 체제는 은행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은행장은 (회장에게) 휘둘리려 하지 않으려 하고 회장은 그룹을 장악하려 한다”면서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회장이 행장을 겸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은행 못지않게 증권, 보험 등 비(非)은행업도 균형 있게 키우자며 도입한 게 지주사 체제인데 정착 과정에서 삐걱댄다고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시키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우리금융과 KDB금융지주가 회장·행장 겸직 체제이지만 ‘민영화’와 ‘무늬만 지주사’라는 각각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어차피 국내 지주사들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현실론 측면에서 겸직 체제가 낫다는 것일 뿐, 반드시 그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과 행장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회장과 행장을 따로 둘 경우 회장에게 은행장을 포함한 자회사 사장단 인사권을 확실히 주고 그 대신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면 이사회가 ‘경영진 거수기’나 ‘정권 방패막이’ 역할에서 벗어나 경영 감시와 견제라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책임자인 사외이사들이 회장 인선 작업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성낙조 노조위원장은 언론에 거론된 차기 회장 후보들에게 “(낙하산 고리를 끊으려면) 내부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며 회장직을 고사해줄 것을 요청하는 자필 편지를 일일이 보내기도 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2014-09-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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