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3일, 정몽준 의원이 워싱턴을 방문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재산 수백억원을 사회에 환원키로 약속한 것이 화제가 됐다. 한 특파원이 질문을 던졌다. “정 의원도 대권에 뜻이 있다고 하는데, 재산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대부분의 특파원은 정 의원이 대수롭지 않게 답변하고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만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라고 거듭 물었다.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던 것으로 보였다. 정 의원은 “부자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도 했다.
정 의원은 세계 최고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의 지분 10%가량을 가진 대주주다. 그는 현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여섯째 아들이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는 ‘재벌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현황에 따르면 정 의원의 재산은 2조 227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조 6481억원이 줄었지만, 정치인 가운데는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다. 언론사들은 국회의원 재산 통계를 낼 때 아예 왜곡 현상을 우려해 정 의원을 제외한다.
정 의원이 그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02년에 이어 두번째 도전이다. 현대가로 따지면 세번째다. 정 의원의 부친 정주영 회장은 1992년에 직접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는 “재벌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권력과 돈을 다 갖겠다는 것”이라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국회에서 30분가량 이어진 정 의원이 대선 출마 회견에서는 “왜 재벌이 대통령까지 하려느냐.”는 질문이나 재산 환원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 의원 스스로 “대기업이 국민으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을 뿐이다. 재벌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가 대선의 주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 의원이 그동안 7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2년에 대선에도 한 차례 도전하면서 ‘재벌 대통령’ 논쟁이 이미 낡은 것이 됐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차피 정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본 것일까.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정 의원은 세계 최고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의 지분 10%가량을 가진 대주주다. 그는 현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여섯째 아들이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는 ‘재벌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현황에 따르면 정 의원의 재산은 2조 227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조 6481억원이 줄었지만, 정치인 가운데는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다. 언론사들은 국회의원 재산 통계를 낼 때 아예 왜곡 현상을 우려해 정 의원을 제외한다.
정 의원이 그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02년에 이어 두번째 도전이다. 현대가로 따지면 세번째다. 정 의원의 부친 정주영 회장은 1992년에 직접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는 “재벌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권력과 돈을 다 갖겠다는 것”이라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국회에서 30분가량 이어진 정 의원이 대선 출마 회견에서는 “왜 재벌이 대통령까지 하려느냐.”는 질문이나 재산 환원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 의원 스스로 “대기업이 국민으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을 뿐이다. 재벌 개혁이나 경제 민주화가 대선의 주된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 의원이 그동안 7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2년에 대선에도 한 차례 도전하면서 ‘재벌 대통령’ 논쟁이 이미 낡은 것이 됐을 수도 있다. 아니면 어차피 정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본 것일까.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2-05-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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