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내기 외교관이 본 아세안의 꿈/변은영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2등서기관 시보

[기고] 새내기 외교관이 본 아세안의 꿈/변은영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2등서기관 시보

입력 2013-12-23 00:00
수정 2013-12-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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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영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2등서기관 시보
변은영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2등서기관 시보
입부 2주차인 외교부 새내기다. 얼마 전 과장님, 선배님들과 함께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 다녀왔다. 프로펠러가 달린 현지 비행기를 타고 양곤과 네피도를 오가는 숨 가쁜 일정이었다.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 몰랐던 첫 해외 출장이었기에 두려움과 설렘으로 전날 밤 한참을 뒤척였다.

회의가 열리는 양곤의 호텔은 기대보다 훨씬 화려했지만 각국 외교관들의 모습은 내게 오히려 현실 감각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환영 만찬 때까지도 심각한 귓속말을 하고, 명함을 주고받으며 분주히 국익을 계산하는 그들은 시차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진 야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국문화의 열렬한 팬이라는 미얀마 외교관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풀하우스’로 같아서 우리는 쌍둥이 언니, 동생을 자처할 정도로 반가워했다. 그녀의 눈빛엔 한국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데, 나는 미얀마를 칭찬할 얕은 지식밖에 없어 미안했다.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높아진 이때, 사상 최초의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면서도, 교류의 상호성을 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ARF 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EU), 북한 등 각 대표의 발언도 들을 수 있었다. 아세안과 다방면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북핵·방공식별구역·남중국해 문제 등 긴박한 지역정세를 논의하는 모습은 ‘외교전(戰)’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모양과 성능만 달랐지 각자 총알과 방탄복을 잘 준비해 온 듯한 인상이었다. 도저히 방어할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의 지적에도 나름의 논리로 맞받아치는 국가를 보며 이론으로만 배웠던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내년 12월 한국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아세안에 대한 강대국들의 높아지는 정치·경제적 관심은 한-아세안 관계의 진전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렛대와 주춧돌이 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6억명이 넘는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갖춘 무한한 잠재력의 땅 아세안.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걸어온 빛바랜 시간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이룩한 발전을 꿈꾸는 아세안 국가들에 우리는 다른 선진국과 차별화되는 협력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작업에 기여할 입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내 마음을 울렸던 한 가지 잔상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네피도에 드넓게 펼쳐진, 왕복 18차선의 아직은 텅 빈 도로…. 아마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선견지명으로 미리 건설해 두었으리라.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나도 그런 배짱으로 마음의 도로를 넓혀 가면 되지 않을까. 차츰 실력이 쌓여 언젠가 준비된 내가 기회를 만났을 때 기적처럼 신나게 질주할 수많은 차들을 꿈꾸면서.
2013-12-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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