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 한국학연구원 교수
등재가 확정된 뒤 일주일 정도는 온 나라가 김치와 김장에 열광하는 듯했다. 특히 식품산업 관련 정부 부처나 관련 기관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 영광을 즐겼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은 김치냉장고를 만드는 업체들이 별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21세기에도 한국인이 ‘김장’을 멈추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김치냉장고’인데도 말이다. 만약 김치냉장고가 없었다면 어떻게 고층 아파트의 거실에서 김장을 할 수 있겠는가! 아제르바이잔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외대 박상미 교수의 말에 의하면, 고층 아파트의 거실에서 김장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위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단다. 19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김치광’이 이제는 민속촌이나 박물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김장김치가 맛있다고 해도 그것을 저장해 둘 공간이 없다면, 어느 누가 가정 단위로 김장을 하겠는가.
그래도 일부 언론에서 김치냉장고에 주목하여 기사를 내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의 세계화가 곧 김치의 세계화”라는 정도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세계화’라는 담론을 지지한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김치냉장고의 세계화가 곧 김장의 세계화”라고.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김치를 한국인처럼 매일같이 먹도록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이 결코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식의 기호는 관습이고 문화이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한국의 김장김치가 가진 사회문화사적 의미는 90%가 넘는 도시화율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의 산물인 김장을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김장김치와 닮은 중국의 자차이나 옌차이, 일본의 쓰케모노, 독일의 사워크라우트, 심지어 피클까지도 도시화율이 높아지면서 직접 담그는 집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다면 ‘김장’이란 행사를 이들 채소 절임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가족 공동체의 보존과 음식의 나눔이 김장의 핵심이듯이, 그들 나라에 김장을 되살리는 운동을 한국사회가 함께 나누면 좋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만든 채소 절임음식을 저장할 공간이 없다고 하면, 그때 김치냉장고가 앞장서면 되는 일이다. 김치를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산업화를 조장하게 된다. 김치의 산업화는 종국에 가정의 김장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해체의 위기 속에 있는 중국 옌지시의 조선족 가정에서 김장하는 집이 거의 없듯이 말이다. 적당한 수준이면 몰라도, 김치의 산업화율이 올라갈수록 김장은 소멸되고 만다. 그래도 ‘김장’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면, 김치산업이 아니라 김치냉장고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의 공동체적 삶과 김장이 지속된다.
2014-02-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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