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누가 백조를 쏘았나/심재억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누가 백조를 쏘았나/심재억 전문기자

입력 2013-08-15 00:00
수정 2013-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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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전문기자
심재억 전문기자
사례를 보자. 공휴일 당직을 맡은 수도권 요양병원의 의사는 한 환자의 복부에 꽂아놓은 위루관으로 유동식을 투입하라고 지시했고, 간호사(실은 간호조무사였다)는 지시대로 그곳으로 유동식을 투입했다. 그러나 그 관은 만성 신부전을 앓던 환자의 혈액투석을 위해 설치해 놓은 접근로였고, 그 바람에 환자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처럼 어이없는 의료 과실로 인한 사망자가 국내에서 연간 1만명에 이른다. 인제대 보건행정학부 김원중 교수는 미국에서 활용하는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 추정모델’을 적용해 봤더니 국내에서 연간 최대 1만명이 의료 과실로 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연간 사망자와 맞먹는 규모다.

이를 두고 의사들을 비난하는 건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흔한 의료 과실이지만 적어도 의료 영역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대한 면죄의 범위를 폭넓게 용인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행위의 불가피성을 고려한 탓이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의료적 문제에 대해 정말 국가는 책임이 없느냐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수술할 때 병소를 어떻게 절개하느냐에 따라 보험수가 적용 여부가 결정될 만큼 간섭 일변도로 짜여져 있다. 물론 이런 규제나 간섭이 모두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국가가 정책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책무를 논할 것도 없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의료사고가 의사의 자질이나 실수, 판단착오로 빚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의료계의 문제 이면에 정책이 작용하고 있고, 정부의 방기와 무책임이 도사리고 있다면 논의의 방향은 달라진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공과 편중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더러는 의사들이 돈 되는 일, 쉬운 일만 하려 든다고 비난하지만 의사들 입장도 같이 살펴야 답이 나온다. 일은 힘든데 돈은 안 되고, 어쩌다 소송 한번 걸리면 인생 종치기 십상인 데다 자긍심마저 가질 수 없는 전공과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의대 정원과 병원별 허가 인력, 수가정책이 잘못돼 원하는 전공을 외면해야 하는 아픔을 이해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들도 당연히 자신들의 삶에 대해 ‘방어진료’를 할 수 있다.

많은 신참 의사들이 외과·흉부외과·비뇨기과·산부인과·병리과 등을 기피하고 있다. 집도의가 없어 응급수술을 못 받은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 절명하고, 병리 분야에서 세포·조직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등 떠밀려 전공을 선택한 의사들에게 남다른 자질과 소명의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국가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환자들이 의사로 인해 다치고 죽는데, 국가는 한사코 ‘의사와 환자의 문제’라는 오진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래서는 나라의 격에 어울리는 의료복지를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지금, 전국의 각급 병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료사고에 정말 국가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jeshim@seoul.co.kr

2013-08-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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