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노인과 신문/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노인과 신문/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5-12-29 23:00
수정 2015-12-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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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 속한 것은 죄다 낡았다. 노인은 40여일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노인과 바다에 나가던 소년을,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자 소년의 부모가 다른 배로 옮겨 가게 떠밀었다. 소년이 떠난 후에도 노인은 날마다 바다로 나갔다. 84일째, 노인은 고기를 건지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노인의 눈은 굽힘을 모르듯 바다 빛깔처럼 파랗게 빛났다. 그 형형한 눈으로 노인은 신문을 읽었다.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눕거나 신문지를 말아 베개로 썼다. 소년은 자주 노인에게 왔다. 노인은 침대 밑에서 꺼낸 신문을 소년에게 읽어 주었다. 청새치를 잡고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다 돌아온 날도 노인은 신문지를 깔고 단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노인이 소년에게 바다로 떠난 동안에 보지 못했던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에게 신문은 청량제였다. 그와 소년의 대화를 이어 주는 가교였다. 멕시코만의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충직한 신문 독자였다. 지혜로웠고, 죽음 앞에 물러서지 않는 용기로 충만했다. 노인 어부는 젊었다.

서울신문이 노인에 대한 기획 기사를 실었다. 칠흑 같은 삶의 바다에서 거꾸러진 노인들의 고독과 궁핍을 절절히 다루었다. 지난여름엔 파워 엘리트들의 병역을 샅샅이 훑어서 특혜 시비를 세상에 알렸다. 기사를 게재한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에 관훈언론상이 주어졌다. 상보다 더 값진 사회적 호평이 쏟아졌다. 봉우리 하나 둘이 높다 하여 모조리 산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높고 낮은 산들이 나란히 어깨를 하고 쉼 없이 바다로 달려가야 비로소 산맥이 되어 솟는다.

서울신문이 대형 기획뿐만 아니라 주간 단위의 주기적인 기사들을 더욱 촘촘하게 기획하길 기대한다. 토요일자 신문의 기획을 더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도 시급해 보인다. 레저·연예·오락 섹션 같으면서도 본지에 묶여 있는, 이도저도 아니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서울신문의 토요일 판이 기획의 보고라는 명성을 얻길 바란다. 주말판 섹션에 군데군데 끼어드는 광고를 효과적으로 재배치하는 것도 과제다. 거대 산맥이 되는 서울신문의 꾸준한 기획을 기대한다.

젊어지지 않으면 신문은 죽는다. 거칠고 어두운 정보의 바다에서 진실을 건지기 위해 싸워야 하고, 시계 제로의 먼 바다에 갇혀 있을 때에도 항구의 불빛 아래 진실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뼈만 남은 앙상한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왔을지라도 항구 사람들은 그 흔적만으로도 거대한 물고기를 연상해 냈다. 산티아고 노인은 그때 사람들의 관계와 관계 안의 기억 속에서 젊었다.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소년 앞에서 노인은 여전히 젊게 살아났다.

현재 온라인에서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고 검색되는 서울신문의 ‘선데이 서울’ 정보도 재고가 필요하다. 아무개와 다른 아무개의 어쩌구저쩌구하는 이야기들은 서울신문의 정보를 낡고 노쇠해 보이게 한다. 더욱이 내밀한 신상 정보가 선연하다. 디지털 유품을 고민하고 잊혀질 권리가 격하게 요구되는 시대에 맞지 않다고 본다. 선데이 서울식 정보는 잊힐 권리를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법적인 주장 앞에, 새로운 기획 정보를 원하는 젊은 독자들의 요구 앞에 거듭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것이 늙은 것이 아니라 낡은 사고와 굼뜬 행동이 사람을, 신문을 늙게 만든다. 더 젊어지는 서울신문을 기대한다.
2015-12-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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