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이제 우리도 모방의 차원을 넘어 개척자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초가 확실하고, 방법론이 탄탄해야 한다. 영국의 경영전략 전문가 존 호킨스는 2001년 저서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에서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창조경제라 했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창의산업(Creative Industries)을 주창하면서 신경제 체제를 강조했다. 1998년에 발표한 ‘미래의 창조:문화, 예술, 창의적인 경제를 위한 전략’은 산업혁명의 원조(元祖)로서 제조업 강국이던 영국의 엄청난 변신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들은 창의산업을 ‘개인의 창의성을 살려 지적 재산권을 설정하고, 그 활용으로 부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광고, 건축, 미술과 골동품 시장, 공예, 디자인, 디자이너 패션, 영화, 쌍방향 레저 소프트웨어, 음악, 공연예술, 출판, 소프트웨어,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13가지 산업을 핵심 영역으로 지정했다.
창의산업의 등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기술적 상징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블레어 리더십 아래 영국의 창의적 스피릿은 특정 산업 지원에서 탈피해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을 밑천으로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 체제로 이어진다. 그 결과 창의산업은 기존의 문화산업을 대체하는 데서 훌쩍 나아가 과학기술, 교육, 클러스터, 도시 등으로 확장되면서 새바람을 불어넣게 된다. 창의력 기반의 문명사회로 이행하는 한가운데서 문화산업 유래의 창의성이란 키워드를 주요 분야로 파급시켜 신경제체제로의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영국식 창조경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해석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국가혁신 체제의 틀에서 창의경제를 풀이하는 것도 시사적이다. 국가혁신 체제란 한마디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연구개발과 비즈니스화를 거쳐 국민의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편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기체적 체제를 뜻한다. 미국의 최근 정의에 따르면 그 구성 요소는 ①자본의 흐름 ②노동력 풀의 유연성 ③정부의 비즈니스 수용성 ④정보통신기술(ICT) ⑤민간부문 개발 인프라 ⑥지적 재산권 ⑦과학기술 등 인적 자본 ⑧마케팅 기술 ⑨창의성 중시의 문화적 토양으로 규정된다. 한국이라고 해서 별다를 이유는 없다. 과학기술은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국제화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이들 요소가 골고루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의경제의 틀이 특정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이 아니라 창의성과 혁신을 유도하는 기본 요소의 강화와 연계라는 사실이다. 물론 성장동력으로서 ICT의 위력은 막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아홉 가지 요소 중 하나인 ICT를 과학기술 분야와 동격으로 놓고 창조경제의 혁신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우려스럽다. ‘이미 열리고 있는 바이오경제시대에 대한 대비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특정 산업 위주의 경제성장 논리가 전반적 혁신역량 강화에 순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염려가 있어서다.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의 몫은 자본과 인력이 막힘 없이 흐르고 지적 재산권이 보장되는 등 혁신을 위한 기본토양을 조성하고, 창의적 인재 양성의 길을 터 주면 된다. 그로써 과학기술과 산업, 교육, 문화, 예술 등과의 모든 접점에서 융합 혁신에 의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창조경제 성공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2014-01-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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