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하 정책뉴스부장
말은 생각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초등학생의 등교를 돕는 사람이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 맞벌이가 늘어나고 장려되는 상황에서 녹색어머니회의 구성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까닭에 자원봉사 대상자가 해당 초등학교 학생의 부모여만 하는지도 짚어보고 싶다.
정부가 일하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아빠의 육아휴직을 권장하는 방안을 내놨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책 자체가 나온 것이 반갑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대책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 나가는 작업과 병행돼야 한다.
세간에서는 명문대 진학 조건으로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등을 꼽는다. 자녀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대학 진학 문제에 아빠가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은, 자녀 양육에 있어 아빠의 방기를 합리화시키려는 사회적 변명처럼 들린다. 엄마가 진학의 모든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학생들로부터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를 더욱 그렇게 몰아간다.
주변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이라도 학부모 카페에 들어가 최신 입시 정보를 검색하는 아빠들이 있다. 그중 한 고위공무원은 아빠의 무관심을 명문대 진학 조건의 하나로 꼽은 ‘통념 아닌 통념’은 학원들이 만들어 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아빠보다는 사회 경험이 적을 것 같은 엄마가 학원 입장에서는 다루기 쉽지 않겠느냐는 의혹에서다.
엄마의 정보력은 때로는 대학 입시의 다양성이 갖는 장점을 무력화시킨다. 지난달 발족한 국가교육과정 정책자문위원회의 한 위원은 얼마 전 만난 모임에서 제대로 된 대학입시제도가 공교육을 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입시제도를 만들어도 학원의 도움 등으로 자녀를 맞춤형으로 교육하는 ‘열성맘’에 번번이 져왔고 앞으로도 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고학력의 경력단절여성이 줄어드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무관심을 천천히 바꿔 나가자. 아빠가 영유아의 양육을 위해 1년의 육아휴직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반나절이라도 양육에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학부모 상담이나 공개 수업, 아이의 동네 병·의원 진료 등을 위해 반차를 가는 아빠의 모습이 익숙해져야 배우자 출산 휴가를 며칠 가고, 몇 개월이라도 육아휴직을 가는 것이 아빠의 낯설지 않은 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빠의 반차는 일하는 여성의 불가피한 반차를 줄일 수도 있고, 반차의 활성화로 시간제 일자리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lark3@seoul.co.kr
2014-02-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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