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의 묵시록/송종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의 묵시록/송종찬

입력 2017-11-03 18:00
수정 2017-11-04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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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묵시록/송종찬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운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도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서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뼛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갈 데까지 가 봤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다 태웠어야 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끝까지 가 봤어야 했다. 망설였다. 미적거리다가 중도에서 멈췄다. 그래서 사랑은 타다 만 장작처럼 볼썽사나운 후회로 가슴에 남았다. 첫눈은 따스하다. 혀 끝에 대면 이내 녹아 사라진다. 첫눈이 그렇듯이 갈 데까지 간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린 사랑은 흔적이 없다. 다음에 사랑이 오거든 갈 데까지 가 보시라.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마시라.

장석주 시인
2017-11-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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