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입력 2018-04-06 18:14
수정 2018-04-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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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h/이영빈
Bath/이영빈 112×145㎝, 종이에 연필과 수채물감
2011년 갤러리학고재 개인전, 2008년 알토그래프 개인전 등
나쁜 짓들의 목록/공광규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것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

세상 정의를 다 가진 듯 당당한 사람, 늘 옳은 소리만 외치는 사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다.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걸 모르니 저토록 당당하다. 개미를 밟고, 풀잎을 꺾고, 꽃을 따고, 돌멩이를 옮기고, 도랑을 막아 물길을 돌렸다. 다 나쁜 짓이다. 만물이 한 몸으로 연결된 생명공동체, 세월 인연으로 얽힌 인드라망 속에 있는데, 오직 사람만이 우주의 주인인 양 제멋대로 산다. 저리도 많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장석주 시인
2018-04-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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