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과 까치밥/박건승 논설위원

[길섶에서] 모과 까치밥/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8-01-16 20:46
수정 2018-01-16 21:5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언제부턴가 초겨울이면 노랗게 익은 모과 서너 개씩을 사다 거실에 둔다. 모두 큼직하고 매끈한 개량종이다. 작은 소쿠리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기가 그 어떤 인공 방향제에 견줄 바 아니다.

요새는 모과에도 농약을 친다는 얘기를 들어 다소 꺼림칙하던 차에 지난달 지인이 흰 눈을 뒤집어쓴 무농약 노란 모과 사진 몇 장을 SNS로 보내왔다. 북한산 자락 자신의 집 뒤에서 자생하는 것들 중에 가을철 수확을 끝낸 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란다. 푸른 하늘가에 순백과 노랑이 앙상블을 이룬 듯하다. 날짐승을 위한 것이란 뜻에서 이름도 ‘모과 까치밥’으로 붙였다. 까치가 감이 아닌 모과를 찍어 먹는다는 것도, 모과 까치밥이란 말도 처음 듣는다. 순수한 동심이 발동했으리라.

한겨울에 못난이 모과 까치밥 몇 개를 얻은 것까진 좋았는데 일주일을 못 버텼다. 향기 대신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썩어 버렸다.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 긴장감이 확 풀린 탓일까. 아니면 인간이 제 먹이를 탐한 것에 까치의 분풀이가 작용한 것일까. 조상들은 ‘이눔아, 까치밥은 남겨 두어라’ 하셨거늘. 제 발 저린 도둑이 따로 없다.
2018-01-17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