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한 명창 박동진 선생의 소리판을 처음 구경한 것은 198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이었다. 북잽이와 주거니 받거니 걸쭉한 욕설과 19금(禁) 농담이 즐거웠는데, ‘흥보가’를 감동적으로 완성해 가는 솜씨에서 대가(大家)의 기운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판소리가 ‘어질더질’ 혹은 ‘더질더질’이라는 사설로 마무리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판소리를 완창하려면 짧아도 서너 시간, 길게는 일고여덟 시간이 걸린다. 완창 판소리 공연에 간 적은 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으니 구경꾼도 ‘어질더질’을 만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소리꾼은 완창 능력이 없으면 평생 입 밖에 내놓을 일도 없다는 사설이 또한 ‘어질더질’이다.
‘어질더질’이 무슨 뜻인지 이런저런 주장이 있지만 “소리꾼은 목이 아프고, 북잽이는 팔이 아프니 이제 그만 하자”는 농반진반 해석에 마음이 간다. 마침 국립창극단이 송년음악회에 ‘어질더질’이라는 제목을 붙여 눈길을 끈다. 머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2024년을 마무리 짓는 데 딱 맞게 붙인 이름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4-12-18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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