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韓日…이번엔 ‘싱크탱크 전쟁’

워싱턴의 韓日…이번엔 ‘싱크탱크 전쟁’

입력 2014-06-04 00:00
수정 2014-06-0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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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사카와재단 세확장에 韓 브루킹스에 ‘한국석좌’

올해초 ‘과거사’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붙었던 한·일의 외교전이 이번에는 ‘싱크탱크’로 전선을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가 주무대다. 미국 정책 결정과정의 한 축을 이루는 이 ‘지식생산소’에 앞다퉈 투자를 늘리면서 세확장을 시도하는 형국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과거사 외교전에서 수세에 몰렸던 일본은 올해 초부터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며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특히 정부보다도 민간이 주도하는 양상이라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일본 최대의 공익법인인 사사카와(笹川) 평화재단이 지난달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장을 새로운 이사장에 영입한 것이 가장 극명한 사례로 꼽힌다.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인 사사가와 료이치(笹川良一)가 설립한 이 재단은 워싱턴 싱크탱크를 주무르는 ‘큰 손’이다. 일본관련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직접 주관하거나 후원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게 정설이다.

지난 4월30일 블레어 이사장의 취임을 기념해 열린 ‘일본의 신 안보 정책과 역량’ 세미나에는 워싱턴 내에서 일본과 관련해 활동하는 전문가와 관료, 의회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올들어 브루킹스연구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주요 싱크탱크들이 주최한 몇몇 일본 관련 세미나는 사사카와 재단이 후원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 뛰고 있다. 주재국 여론주도층과 지식계층을 상대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전개한다는 명분 하에 올들어 미국의 싱크탱크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외무성의 공공외교 담당차관 산하에 싱크탱크 투자계획을 관리하는 전담팀을 구성,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만큼 워싱턴 무대에서 일본의 목소리가 기대만큼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초조감의 반영이라는 풀이도 있다. 특히 과거사 왜곡을 일삼으면서 일본이 아시아 리더국가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내에서는 워싱턴 조야에 돈을 뿌리는데 비해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그럼에도 워싱턴의 싱크탱크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크게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우려는 일본이 단순히 자국의 정책과 이익을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과 중국 등 외교 상대방에 대한 미국내 인식을 왜곡시키고 있는 점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일례로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국이 이미 중국 편으로 넘어갔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형성돼있는데, 이것은 일본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외교적 논리를 설파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도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최대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에 ‘코리아 체어’를 개설한게 단적인 예다. SK그룹이 200만 달러,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00만 달러를 ‘매칭펀드’ 방식으로 출연해 만들었다.

워싱턴 유력 싱크탱크에 한국 석좌 또는 한국 관련 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09년 5월 CSIS에 ‘코리아 체어’를 개설한데 이어 미국외교협회(CFR)와 우드로윌슨센터에 한국 연구프로그램이 각각 만들어졌다.

브루킹스 초대 코리아 체어에 임명된 캐슬린 문 전 웨슬리대 교수는 사회학 전공으로 탈북자 문제, 여성, 문화분야에 강점을 가진 인물이다. 진보적 학문성향을 보여온 문 전교수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외교·안보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빅터 차 CSIS 코리아 체어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경우 한국 관련 정책활동의 외연이 넓어질 것으로 국제교류재단측은 보고 있다.

내년 중으로 다른 유력 싱크탱크에도 국제교류재단과 다른 대기업이 매칭펀드를 형성해 ‘코리아 체어’를 만들 예정이다. 현재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 두산그룹 등 유력 대기업들도 워싱턴내 유력 싱크탱크에 이미 투자를 했거나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또 국제교류재단은 ‘스페셜 라운드테이블’이라는 명칭으로 세계 주요 싱크탱크와 매년 반기별로 정례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한 유현석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3일(현지시간) 오후 CSIS에서 워싱턴DC 소재 주요 연구소 선임연구원 15명과 함께 첫 토론회를 가졌다.

이밖에 싱크탱크 전문가들 가운데 젊은 층을 상대로 다양한 이벤트와 방한 초청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한반도 이외의 아시아 전문가들과도 정책적 네크워크를 구축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교류재단 측은 밝혔다.

유현석 이사장은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의 싱크탱크는 행정부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관여하는 ‘정책서클’에 들어와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 행정부 못지않게 싱크탱크와 소속 전문가들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교류재단이 1년간 싱크탱크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은 100만 달러에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맨해튼의 코리아소사어티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30만 달러를 제외하면 워싱턴 싱크탱크에 쓸 수 있는 돈이 7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일본은 정부와 공식재단 외에도 도요타와 히타치 등 주요 대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엄청난 규모의 돈을 투자해왔다”고 말했다.

워싱턴 내에는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연구기관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하 한미경제연구소(KEI·소장 도널드 만줄로 전 하원의원)가 있다. 연간 운영비가 250만 달러에 달하는 KEI가 나름대로 다양한 세미나와 이벤트를 전개하고 있으나 얼마나 효과적이고 영향력있게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민간 싱크탱크로는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독립적 싱크탱크’로서의 좌표 설정과 튼튼한 재정적 기반을 바탕으로 워싱턴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펴고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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