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여당, 수적우위 앞세워 단독 표결…내일 중의원 본회의 표결 강행 야당·시민사회 반발…”민주주의 무시한 폭거”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위헌 논란에 휩싸인 집단 자위권 법안을 힘으로 처리하는 길을 택했다. 도쿄에서 약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항의 집회가 열리는 등 여론의 반발이 거세짐에 따라 파장이 예상된다.중·참 양원에서 과반의석을 보유한 연립여당(자민당과 공명당)은 15일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골자로 하는 11개 안보 법안 제·개정안에 대한 표결을 단독으로 강행,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이날 ‘강행 표결 반대’ 등이 적힌 종이를 든 야당 의원들이 위원장 단상을 둘러싼 채 ‘표결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와중에 자민당과 공명당 소속 의원들이 기립함으로써 법안은 가결됐다.
아베 총리는 법안이 소위를 통과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에서 심의는 계속된다”며 “국민에게 정중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싶다”고 밝혔다.
심의가 불충분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야당과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통과시키는 것은 정권 정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온몸의 분노를 담아 항의한다”고 말했다.
제2야당인 유신당의 가키자와 미토(枾澤未途) 간사장은 이날이 65년 전(1960년)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당시 총리가 이끈 기시 내각이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속에 총사퇴한 날이라고 소개하고, “그 억울함을 풀려는 동기로 표결 날짜를 정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저녁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의 국회의사당 앞에는 6만 명(주최측 발표)의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헌법을 지키지 않는 총리는 필요없다’, ‘강행 처리를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표결이 강행된 낮 12시 25분께 1천명 정도였던 시위 참가자는 저녁 무렵 젊은이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급증해 도쿄에서 벌어진 집단 자위권 반대 시위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 뿐 아니라 삿포로(札晃), 니가타(新潟), 나고야(名古屋), 교토(京都), 히로시마(廣島), 나하(那覇)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나가사키(長崎)의 5개 피폭자 단체는 이날 발표한 항의문에서 이날 표결을 “민주주의를 무시한 폭거”라고 비난하고 “절대 전쟁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한 연립여당은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민주·유신·공산·사민·생활당 등 5개 야당은 표결에 불참키로 했다.
법안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하면 최종 관문인 참의원으로 이송된다.
이런 가운데, 여당이 이른바 ‘60일 규정’(중의원 통과 후 참의원으로 이송된 법안이 60일 안에 의결되지 않을 경우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해 법안을 성립시킬 수 있는 헌법 규정)을 의식, 중의원 통과를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이 언론에서 제기됐다. 연립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의원에 비해 의석 점유율이 낮은 참의원에서 야당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경우 9월 27일까지인 현 정기의회 회기 안에 ‘60일 규정’을 활용, 중의원에서 재의결하는 방안을 상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베 정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강한 집단 자위권 법안에 대해 결국 수적 우위를 앞세운 ‘정면돌파’를 택함에 따라 일본 정가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최근 여러 언론사의 조사에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더욱 하락할 공산이 커 보인다.
아베 총리 본인도 15일 오전 표결에 앞서 진행된 중의원 특위 마지막 질의 응답 때 안보 법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가 진전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표결을 강행하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한편, 집단 자위권 법안 관련 국회 심의를 그간 생중계해온 공영방송 NHK가 이날 표결 직전의 최종 심의 과정을 생중계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아베 내각은 작년 7월1일 자로 종래의 헌법 해석을 변경,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한 뒤 현재 국회에서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내각이 마련한 11개 안보 법률 제·개정안은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반영하고,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헌법학자들의 지적이 최근 잇따랐다.
집단 자위권은 제3국이 공격당한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권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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