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흉물스런 유산”…미국 전문가 “남중국해 놓고 中과 맞서야”
미국 유력 워싱턴포스트(WP)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3일 2차대전 전승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한 대규모 열병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WP는 5일(현지시간)자 사설에서 “군사 열병식은 20세기의 흉물스런 유산으로 여겨진다”고 비판하고 “히틀러와 스탈린, 침공과 독재, 군사적 근육과 정치적 권위를 동일시하는 이념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WP는 이어 “심지어 공산주의 중국조차도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10년에 한 차례로 열병식 실시를 제한했다”며 “그러나 시 주석은 1만2천 명의 병사와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500점이 넘는 군사장비를 동원해 대대적이고 복잡하게 안무가 이뤄진 열병식을 실시했다”고 비판했다.
WP는 “시 주석은 이번 열병식이 보내는 메시지가 평화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포함한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고 중국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이 열병식 당일인 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 중인 알래스카 인근의 베링해에 전함 5대를 보낸 사실을 거론했다.
WP의 이 같은 논조는 이번 열병식을 개최한 시진핑 정권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돼,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시 주석의 워싱턴 방문에 그림자를 드리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WP는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취지로 열린 이번 열병식에는 진실성이 없다”며 “당시 항일전쟁은 국민당의 장제쓰가 이끌었으나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전 속에서 알려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WP는 “민주적인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열병식에 불참한 북한의 통치자(김정은)에 우위를 얻고자 참석했지만, 이번에 참석한 국가 정상 30명 대부분이 독재자였다”며 “이중 오마르 하산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주장했다.
WP는 “중국이 30만 명을 감군하겠다는 발표는 왜곡”이라며 “군사전문가들은 이것이 평화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육군을 현대화하고 해·공군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 대만을 억누르고 동아시아 해양을 지배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이번 열병식은 남중국해에 대한 근거없는 영유권 주장을 펴는 시진핑 정권의 호전적인 패권주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도 5일 외교안보잡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미국이 중국의 패권 확장 기도에 적극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로닌 소장은 “지금 중국의 해양패권 확장 속에서 모든 미국의 동맹들은 자신들이 버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며 “미국은 역내에서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고 중국의 패권 확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로닌 소장은 이어 “남중국해 문제는 바위나 산호초, 자원의 문제라기보다 미래의 지역 안정과 해양질서에 관련돼 있는 것”이라며 “지금 미국의 동맹·우방국들은 미국의 정책이 군사력의 기초 위에 놓여 있음을 알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의 강압에 맞서고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접근을 거부하는 의미)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동맹·우방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양측이 공개로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가운데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 3일 미국의 한 언론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홈페이지에 올려 이번 열병식에 대한 미국 내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하는 데 주력했다.
’평화를 위해 우리는 미국과 함께 서있다’는 제목의 이 글에서 추이 대사는 우선 주미 중국대사관 중앙복도에 걸린 흑백사진을 거론하며 “사진을 보면 미군 병사와 중국인 소년이 참호 속에서 비둘기 두 마리를 들고 있다”며 “이것은 중국인과 미국인이 함께 만들어놓은 역사에 대한 증언”이라고 밝혔다.
추이 대사는 “전쟁의 증오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평화와 정의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중국과 미국이 서로 함께 싸운 연합군(allies)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며 미국이 중국의 항일 전쟁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승리는 오늘날 국제질서의 초석을 이루고 있으며 여전히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양국의 입장 차를 넘어 공통의 가치와 전후 질서의 주요한 틀을 준수하고 이에 도전하는 행동들을 결연히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이 대사는 “이달 말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질서에 기초한 비전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추이 대사가 ‘전후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일본의 재무장화를 견제하는 메시지를 은연중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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