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협력 핵심인 에너지 분야로 파장 확대
지난달 24일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최근 관계 강화를 모색해온 터키와 러시아가 서로 출혈을 감수하는 치킨게임의 당사자로 돌변했다.러시아가 터키에 대해 일련의 제재를 가하면서 전투기 격추에 대한 터키의 사과를 압박하고 나섰으나 터키가 전혀 굴복의사를 보이지 않으면서 양측간 비난전이 가열되고 있으며 그 파장이 양국 간 핵심 협력 분야인 에너지 분야로 확대되는 등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양국은 최근 천연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과 원전 건설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이번 전투기 격추 파문에도 양국의 깊은 경제적 이해가 걸린 이들 에너지 사업 분야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관측돼 왔다.
그러나 이런 관측을 뒤엎고 전투기 격추 사건의 파문이 확대되면서 국제관계에서 양국 관계가 얼마니 빨리 반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적했다.
양국이 추진 중인 ‘터키 스트림’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는 러시아로서는 말썽 많은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유럽에 가스를 공급할 수 있고 터키 가스 시장이 독일 다음으로 크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큰 기대를 모아왔다. 또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가스관 건설은 러시아의 숙원이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경제제재를 가할 경우 러시아 경제와 현금이 필요한 러시아 기업들이 감당해야할 훨씬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터키 응징을 강행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천연가스업체인 가스프롬의 경우 이미 터키 스트림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한 상황.
네덜란드 헤이그 전략연구센터의 분석가 시지브렌 데 용은 “가스프롬이 여전히 푸틴 외교정책의 인질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가스관 건설을 둘러싸고 양측이 일부 이견을 보이는 상황에서 전투기 격추사건이 러시아 측 사업 철수의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터키 스트림 프로젝트가 좌절될 경우 러시아 에너지 업체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며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남유럽 지역에 상당량의 가스를 수출하려던 장기 구상도 무산될 전망이다.
러시아측은 터키 스트림이 무산될 경우 발트해를 관통하는 이른바 ‘노르(Nord) 스트림’이라는 대안을 갖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요원하다.
아직 구체적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터키 아쿠유 원전 건설 프로젝트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터키측은 원전 건설 작업이 중단됐다고 밝혔으나 러시아측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쿠유 프로젝트는 첫 원전을 건설하려는 지난 50여년에 걸친 터키측 노력의 결실이다.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응징하려던 러시아측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데 용은 “푸틴은 이제 북방 루트를 대안으로 검토할 것이나 위험이 많은 코스”라면서 “당면한 장애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통과 루트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터키 인접 지역에 첨단 군사장비를 증강시키면서 압력을 일층 강화하고 있으나 터키는 시리아내 터키계 부족에 대한 러시아의 ‘인종청소’를 비난하면서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일부 첨단 방공무기들이 사실상 터키를 겨낭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양측간 대립은 악화일로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