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서 “기다려달라”…국내외 논란속 최종 검토작업 진행 ‘핵없는 세상’ 메시지 살리면서 ‘사과 않는다’는 입장 확인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일본 방문 때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할 지에 대해 명시적 입장표명을 피했다.영국을 방문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22일(런던 현지시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 달 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와 조율 중’이라는 일본 닛케이신문 보도를 확인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아시아를 방문할 때까지 아시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을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26∼27일 일본 미에(三重)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나서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경우 원폭 투하 이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피폭지를 방문하는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2009년 취임 이후 주요 외교 어젠다로 추진해온 ‘핵없는 세상’의 중요성을 알리고 비확산과 핵안보를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을 강조하는 상징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데 대한 ‘사과’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게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은 줄곧 이 원폭 투하를 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고 미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규정해왔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와 전쟁포로 단체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행(行)을 반대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유약하다고 비판해온 공화당이 이를 공세의 빌미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제의 직접적 피해를 당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주변국에서도 과거사를 부정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태도를 감안해볼 때 ‘가해자’인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의 관측을 종합해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핵없는 세상’을 지향해나간다는 메시지 차원에서 히로시마를 방문하되,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다는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방문할 경우 현지에서 공개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가는 쪽으로 최종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이번 방문이 사과로 비치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를 하는데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복수의 미국 고위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나서 히로시마를 찾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22일 자로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동행해 히로시마평화공원에서 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앞서 존 케리 국무장관은 11일(도쿄 시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아 원폭 피해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기자들에게 “모두가 히로시마를 방문해야 한다”며 “나는 언제인가는 미국의 대통령이 그 모두의 한 명이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선 바 있다.
백악관은 이날 연합뉴스에 보낸 논평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고대하고 있다”면서도 “히로시마를 방문할 지에 대해서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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