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앙정보국 보고서 공개 파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잔혹한 성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CIA의 ‘고문 보고서’가 9일(현지시간) 공개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1월 취임 사흘 만에 구금자에 대한 고문과 잔혹한 처우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EO)에 서명한 날로부터 5년여 만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하는 보고서에는 2000년 예멘에 정박한 미군 구축함 ‘콜’호에 폭탄 공격을 가했던 알카에다 간부 압델 라힘 알 나슈리가 전동 드릴로 위협당하고, 구금자 1명 이상이 빗자루로 성고문 위협을 당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CIA는 또 구금자 1명 이상을 모의 처형으로 협박했으며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를 5일간 잠도 재우지 않고 연속 심문하는 등 허용된 심문기법을 극단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CIA의 테러 용의자 심문 내용이 담긴 6000쪽 분량의 기밀문서를 500여쪽으로 요약해 작성됐으며 가혹한 심문을 통해 비강압적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주요 정보를 한 건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게 요지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무려 83차례나 물고문을 당한 주바이다는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알아내는데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CIA의 고문 직전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미 빈라덴의 행방을 알아냈다.
현재 미 법무부는 이런 가혹한 심문 방식을 두고 ‘고문’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CIA 비밀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면서 고문이란 용어를 이미 사용했다.
미 국무부는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세계 곳곳에서 반미 감정에 불이 붙고 미국의 시설이 공격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주말 전 세계의 주요 미군 지휘관들에게 경계 태세를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고문이 자행됐던 시기에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CNN에 출연해 CIA를 지원했다.
그는 “우리(조국)를 위해 CIA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이들은 애국자들”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헤이든과 조지 테닛 등 전 CIA 국장들은 최근 팀을 이뤄 부시 행정부 인사들을 접촉해 자신들의 결백을 호소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헤이든은 “보고서 내용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적에게 악용될 수 있다”면서 “우리는 고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역사를 방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4-12-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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