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혐오범죄 규탄 집회 현장 가보니
참석자 전원 마스크 쓰고 차별 경험 성토“워싱턴서 6년 생활… 아시아계 결집 처음”
“많은 여성 피해자들의 이름이 사라졌다”
지나가던 차량도 경적 응원·공감대 형성
‘보이콧 차이나’ 등 반중단체들과 설전도
미국 워싱턴DC 맥퍼슨 스퀘어에서 21일(현지시간)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한 어맨다와 멜리사가 얼굴 없는 희생자를 상징하는 판화를 들고 있다.
지난해 흑인시위가 거셌던 백악관 인근 ‘BLM 플라자’에서 도보로 불과 2분 거리인 맥퍼슨 스퀘어에서 21일(현지시간) 만난 미미 송은 ‘아시안 혐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라고 적은 피켓을 든 채 “이제는 (아시아계 혐오를) 바꾸자”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모인 1000여명의 시민들은 지난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백인 로버트 에런 롱(21)에게 희생당한 8명을 추모하고,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범죄를 규탄했다. 시위는 샌프란시스코, 휴스턴, 시카고 등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DC 맥퍼슨 스퀘어에서 21일(현지시간)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한 중국계 미국인 탄잉이 피해자들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다른 시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차용한 ‘미국을 다시 친절하게’(Make America Kind Again)라고 적은 피켓을 들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트럼프의 대중국 혐오발언이 최근 아시아계 혐오범죄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비극적인 참사를 단지 ‘나쁜 날’로 표현했던 애틀랜타 경찰을 비판하는 ‘나쁜 날은 살인을 정당화하지 않는다’(BAD DAYS don´t Justify Murder)라고 적은 피켓도 꽤 있었다.
이날 시위는 연단 없이 잔디밭 중앙에서 누구나 자신의 인종차별 경험담 등을 얘기하고, 둘러싼 시민들이 듣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발언권을 얻은 시민들은 “인종차별과 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고, 아시아계가 많았지만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the police)라고 적힌 마스크를 쓴 흑인을 비롯해 다양한 인종이 함께했다.
미국 워싱턴DC 맥퍼슨 스퀘어에서 21일(현지시간)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에 따라 나온 아이들이 ‘서로를 보호하자’(protect each other)라고 바닥에 분필로 쓴 글을 덧칠하며 놀고 있다.
지나던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집회를 응원했고, 행인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시아계의 분노에 공감했다. 하지만 시위 도중 ‘보이콧 차이나’, ‘위구르 집단학살을 멈춰라’라는 문구를 붙인 반중단체 차량들이 나타났다. 이 중 한 대가 시위대 앞에 섰고, 운전자는 “중국은 집단학살국가”라고 소리치면서 설전이 벌어졌다. 시위대 일부가 “우리는 미국인이다. 중국에 가서 말하라”고 화를 냈지만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다 사람들이 더 몰려오자 자리를 떠났다.
글 사진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2021-03-23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