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어린이 책] 눈보라 덮치는데 소는 어디로 갔을까

[이 주일의 어린이 책] 눈보라 덮치는데 소는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4-02-22 00:00
수정 2014-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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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우리 할아버지/현기영 지음/정용성 그림/현북스/44쪽/1만 2000원

제주 한라산 둘레에 완만한 곡면으로 펼쳐진 오름. 여름이면 소뿔이 햇볕에 반짝이고 쇠파리 떼가 금빛 먼지처럼 빛나는 목장에 겨울이 찾아들었다. 백 마리가 넘던 소들도 모두 제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테우리(소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 할아버지는 오름 분화구에 여태 앉아 있다. 암소와 송아지를 데려갈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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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곧잘 아파 드러눕기 일쑤다. 할아버지의 걱정은 친구의 지각에서 그의 오래된 상처로 옮아간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생긴 흉터다. 나라의 남쪽과 북쪽이 각각 따로 국가를 세우려 하자 섬사람들은 맹렬히 반대했다. 이를 싫어하던 쪽의 군인들은 사람과 마소의 목숨을 마구잡이로 앗아 갔다.

젊은 테우리였던 할아버지에게도 군인들이 달려들었다. 도망친 사람들이 숨은 곳을 대라는 말에 허위허위 아무렇게나 가리킨 동굴에 한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숨어 있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이후 할아버지는 사람을 떠나 소들과 곁을 나누며 살아온 참이다.

옛일을 떠올린 사이 친구의 암소와 송아지가 사라지고 없다. 검은 구름 떼가 몰려오고 눈보라가 얼굴을 덮치는데 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제주가 고향인 현기영 작가의 단편 ‘마지막 테우리’(1994)가 원작이다. 작가는 어린 손자에게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동화로 다듬었다. 실제 고향에서 만난 노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가는 “마른 땅바닥의 균열처럼 그물 친 주름살들, 억새꽃같이 허옇게 센 머리칼과 구레나룻, 소처럼 알 수 없는 표정…. 노인은 늦가을의 이울어 가는 초원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제주 4·3사건의 아픔 때문에 속세와 연을 끊고 소의 순정한 눈매, 우직한 발걸음을 닮은 삶을 살아온 노인의 이야기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4-02-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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