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전기
평생 병마와 싸웠지만 정작 다가온 죽음 앞에서 태연했던 사람.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쓰기 위해 하루를 더 살고 싶었던 사람. 생의 흔적을 동화로 남기기 위해 평생을 바친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이다.권정생 작가는 지병인 폐질환, 늑막염 등으로 투병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곤 했다. 사진은 2006년 장편동화 ‘랑랑별 때때롱’을 집필하고 있는 모습.
산처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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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은 기존 한국 창작 동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단과 전쟁의 그림자, 일제강점기의 수탈, 삶과 죽음 등 현실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다. 가난과 폭력 속에서 희생된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애쓴 과정이 책에도 자세히 묘사돼 있다.
“권정생이 살았던 경북 안동은 6·25 전쟁 당시 격전지로 피해가 많았고, 가난한 농촌 아이들은 학교가 아닌 공장에 가거나 식모살이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권정생은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죠. 가난이 부모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전쟁과 이념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아무도 다루지 않은 주제를 파고든 덕분에 그가 독창적인 작가로 존재할 수 있었어요.”
천사나 무지개가 등장할 법한 동화의 전면에 시대의 고통을 내세웠지만 권정생 작품의 주제는 결국 사랑과 평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권정생은 인생의 근본이 더불어 사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은 듯해요. 민들레꽃을 피운 강아지 똥의 희생을 다룬 ‘강아지똥’, 전쟁과 가난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소녀를 그린 ‘몽실언니’가 ‘더불어 사랑하며 살자’는 그의 신념이 담긴 작품이에요.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그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막연한 희망보다는 ‘서로 뭉치면 힘이 되고 밥벌이도 할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 주려고 애썼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는 권정생의 삶을 취재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최초의 발표작 ‘여선생’을 1955년 청소년 월간지 ‘학원’ 5월호에서 발굴해 소개했다. 그 밖에도 늘 죽음을 의식하며 독신으로 지낸 그가 청혼하길 원했지만 포기해야 했던 한 여인과의 사연과 그에게 동화책 출판의 길을 열어 준 이오덕과의 인연, ‘삼형제’로 불릴 만큼 가까웠던 이현주 목사, 이철수 화백과의 교유도 세세하게 복원했다.
“평전이 한 사람에 대한 평가만 하고 그치는 것과 달리 전기는 그 사람이 추구했던 삶을 통해 또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관문 같은 것입니다. 권정생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자신의 작가적 능력을 문학으로 어떻게 승화시켰는지 이해하면 그의 작품이 읽고 싶어질 겁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5-1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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