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삶인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인 줄도 모르고

입력 2012-02-05 00:00
수정 2012-02-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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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아침에 거실 문을 열면 나지막한 앞산에서 내려온 공기가 회초리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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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아침을 먹고,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보온컵에 커피 한 잔 끓여 담아서 집을 나섭니다. 어깨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 손에는 뜨거운 커피가 든 컵, 그리고 눈앞에는 순한 동네 산자락.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람누리 도서관 3층. 종일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쓸 수 있는 멋진 서재가 거기 있습니다. 도서관 창 밖에는 내가 건너 온 산자락이 다정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쓸쓸한 겨울산,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흰 뼈만 추린 모습으로 뭉클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겨울산은 자연의 서재, 자연의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단풍 드는 가을부터 눈 내리는 겨울까지 거의 매일 도서관을 드나들었습니다. 밤 10시까지 이토록 쾌적한 서재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느 밤, 도서관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곳을 떠돌았던가! 차를 타고 먼 곳으로 나가고, 멀리 있는 풍경을 찾아가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돌아오던 날들은 얼마나 황량했던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세계를 구하는 세 가지로 ‘시와 자전거와 도서관’을 꼽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 세 가지가 우리와 가까이 있어서.

안에 없는 것은 밖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찾던 모든 것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시와 자전거와 도서관처럼. 그것이 삶인 줄도 모르고 너무 오래, 밖으로만 나가려 했습니다.

◆김미라_라디오를 사랑하는 이. 고생을 하고도 황폐해지지 않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인본주의자.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오후 6시~8시)의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은 없어>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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