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안보대화에 가토 출금 해제…美 “긍정적 궤도”아베 美연설 주목…당국자 “긴박감·인내심 갖고 노력”
안보 문제를 매개로 한 한일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양국이 과거사 갈등을 딛고 관계개선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한일 양국은 지난달 21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 진전을 독려하고, 올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이후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지난 14일 5년여만에 서울에서 양국 안보정책협의회를 개최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과 일본의 안보법제 정비 문제에 대해 서로의 이해의 폭을 넓혔다.
미국을 사이에 둔 한미일 차원의 일정도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16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가 개최된다.
또 16~17일(현지시간) 일정으로 한미일 국방부 차관보급이 참여하는 ‘3자 안보토의’(DTT)도 워싱턴DC에서 열린다.
일본이 다음 달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요구하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정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서울지국장의 출국을 허용한 것도 관계개선 차원의 신호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일이 안보문제를 매개로 탐색전에 나선 것은 미국의 적극적인 독려에 따른 측면이 적지 않다.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을 채택한 미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우방인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 한미일 3각공조를 통한 북핵 대응과 대중의 부상에 따른 대응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측은 한일관계의 선순환을 기대하며 적극 분위기 조성에 나선 모습이다.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를 처음 제안해 성사시킨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은 14일 워싱턴DC 국무부 본부에서 열린 ‘미일관계 70주년’ 간담회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15일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한일 간 과거사 갈등에 대해 “미국은 일본 정부에 대해 치유·화해를 도모하는 발언이나 노력이 이뤄지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의 설득을 떠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한 잇따른 도발에도 안보나 경제 등 상호 호혜적 분야에서의 투트랙 기조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 중학교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를 통한 일본의 과거사 및 독도 도발에도 대응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올해 상반기 관계개선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하반기에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긴박감과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아베 총리가 쥐고 있다는 평가다.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한 한일간 대화가 지속되더라도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진정한 반성, 위안부 문제 해결 등이 없이는 한일관계에 새로운 동력을 달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는 최근 한일, 한미일간 접촉에서 이 같은 점을 강조하며 일본 측의 전향적 태도전환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서는 올해 8월까지가 한일관계 개선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가 국제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낼 수 있는 굵직굵직한 무대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다음 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또 29일에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오는 8월에는 전후 70주년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아베 담화 등에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을 담은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통화에서 “지금 한일관계는 아베 총리 방미 이전에 실마리를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5~6월을 기점으로 실마리를 마련하고 그것이 진전되면 8월 아베 담화에 반영하는 것이 좋은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토 지국장의 출국금지를 푼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해서 서로 화답하는 형태가 돼야 하고, 대화를 통해 큰 로드맵에 대한 양측의 컨센서스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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