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 꿈꾸는 연평마을
“섬으로 돌아오면 다 살게 해준다는 군수님 말만 믿고 2주 전에 왔는데, 아직 피해 조사조차 안 됐다니….”지난 3일 오후 연평도 대복식당. 주인 유대근(33)씨가 피해 조사를 나온 옹진군청 공무원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였다. 유씨가 손으로 냉동창고 문을 열어젖히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북한의 포격 이후 한동안 전기가 끊기면서 시가 500만원 상당의 꽃게 330㎏이 썩은 채 방치돼 있었던 것. 공무원은 코를 막고 얼굴을 돌린 채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는 연평도 주민과 정부·인천시와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 광경이었다.
요즘 연평도에는 피폭가옥 복구, 어망 손실 등을 놓고 인천 옹진군과 주민 간 첨예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보상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주민들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민들은 봄이 밀려오듯 갈등이 금세 사라지고 섬 전체가 화합하는 꿈을 꾼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4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한 포구에서 어민들이 배에 통발 등을 가득 싣고 만선의 꿈을 키우며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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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격으로 전파 또는 반파된 가옥 49동을 둘러싼 주민과 인천시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해 12월 파손된 가옥들을 ‘안보관광지역’으로 지정해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국비 50억여원을 들여 연평중·고교에 체험관을 세우고 주변 피해가옥 3개 동을 한곳에 모아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나머지 45개 동은 포격을 당한 자리에 그대로, ‘건축물 대장’에 등록된 평수대로 새로 지을 계획이다.
이에 대해 피해 주민들은 “통상적으로 별다른 신고 없이 증축과 개축을 해 온 연평도 실정에 맞지 않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주민 김모씨는 “인천시 계획대로라면 20~30년 전 집 지을 당시 모습 그대로 ‘13~15평짜리 새마을 보급주택’에서 살라는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포격으로 가옥 피해를 입은 30가구 가운데 29가구가 건축물 대장에 적힌 평수와 실제 평수가 달랐다. 신고 없이 증축한 것이다. 포격으로 집과 식당을 모두 잃은 이향미(34·여)씨는 “지난해 7월 2층으로 증축하고, 북한 포격 이후 아직 신고를 못한 상태”라면서 “무허가 증축 건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섬의 실정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살던 집 그대로 지어달라는 것이 왜 무리한 요구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최근 ‘피해주민 재건축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자체적으로 설문조사까지 해 결과를 군수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 ‘보존지역 지정’에 대해서는 반대한 가구가 없었다. 또 ‘재건축할 장소를 군에서 선정하면 이전해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19가구는 찬성, 6가구는 반대했다. 하지만 원하는 건축 방법에 대해서는 ‘실평수대로’가 18가구였던 데 비해 ‘대장면적대로’라는 응답은 4가구에 불과했다. 대책위는 “포격 당시 살던 모습대로 피해 주택을 재건축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4일 인천항을 출발해 연평도로 향하는 쾌속선 갑판에 승객들이 가지고 가는 화물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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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마을 노인들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고 있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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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평도 전역에서는 공무원 45명이 피해 조사를 벌였다. 지난달 18일부터 시작해 4일 피해조사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해 조사기간이 다음주까지 연장됐다. 군도 피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재산피해(건축물 파손 피해), 물품피해(어망피해, 자동차나 생활용품 피해), 영업피해(식당이 영업을 하지 못해 생긴 피해, 식자재 피해), 소득피해(근로 활동을 하지 못해서 생긴 피해) 등을 각각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피해조사를 한다고 그대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물 복구를 위한 보상기준만 정해졌을 뿐 나머지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법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군 관계자는 “주민들을 도와주려고 나섰지만 포격에 의한 피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석달 넘도록 방치된 피해 어구에 대한 보상 방안도 아직 없다. 최철영(45) 연평면사무소 상황실장은 “인천시와 옹진군, 어민들 사이에서 보상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아직 합의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연평도의 한 포구에서 상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붕어빵 등 요깃거리를 팔고 있다.
연평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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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의 상흔이 옅어지고 봄 꽃게철이 다가오면서 주민들의 바람도 부풀어 오른다. 삶의 터전이 하루 빨리 복구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꿈, 조업이 재개돼 연평도 특산인 꽃게와 농어를 배 한가득 잡고 싶은 어부의 꿈, 그리고 북한군이 다시는 삶의 터전을 위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린이들의 꿈까지….
섬 전역에서 실시되는 취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부리 주민 이기숙(70) 할머니는 “우리 삶의 터전인 연평도가 예전처럼 깨끗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나부터 작으나마 힘을 보탤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포격 당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던 이향미(34·여)씨의 바람 역시 하루빨리 마을이 복구되는 것이다. 이씨는 “우리 식당도 급하지만 다른 주민들의 생활터전이나 집이 빨리 복구돼 삶이 안정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을 확실한 방법을 간절히 희망했다. 장인석(57) 새마을이장은 “마을 사람들이 몇명만 모이면 북한이 또 도발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면서 “북한이 ‘키 리졸브’ 훈련을 앞두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다던데 서해 5도에 피해가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권(50) 동부리 이장도 “서해 5도 특별법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연평도는 직접 포격을 받은 지역인 만큼 정부 차원의 또 다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이장은 “연평도를 오가는 교통편이 불편해 섬의 물가가 비싸다. 정부에서 화물선을 운항하든지 면세해 주는 방안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평도 김양진·서울 윤샘이나기자
ky0295@seoul.co.kr
2011-03-0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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