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돋보기] 내 마음속 영웅 故최동원을 기리며

[스포츠 돋보기] 내 마음속 영웅 故최동원을 기리며

입력 2011-09-15 00:00
수정 2011-09-1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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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동원을 만난 건 중국 광저우에서였다. 지난해 11월 18일.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 준결승 중국전이 열리기 2시간 전이었다. 당시 아오티 구장은 더웠다. 기온은 3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선수들이 아직 몸도 풀지 않던 시각에 최동원은 도착했다.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동원은 “후배들 야구하는 모습을 직접 보려고 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관전하는 국제경기라 살짝 흥분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인상을 잔뜩 썼고 호흡도 거칠었다. “너무 더워서 힘이 들어 그렇다. 미안하다.”고 설명했다. 햇빛 가릴 것을 찾아다 건넸지만 오래 못 버텼다. 10여분 앉아 있다 자리를 떴다. “나중에 컨디션이 좋아지면 그때 다시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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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최동원
그날 한국은 중국에 7-1로 이겼다. 일방적인 경기였다. 그러나 최동원은 약속을 못 지켰다. 현장에서 직접 후배들의 플레이를 보지 못했다. 낮 경기 땡볕을 이겨낼 체력이 안 되어서다.

어쩌면 당시에도 최동원은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야구장을 나서는 그의 등은 왜소하고 쓸쓸해 보였다. 어린 시절 내 영웅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984년 11월이었다. 텔레비전 야구 중계를 보던 아버지는 밥상을 뒤집어엎었다. “이겼다, 이겼어.” 화면 안에선 관중들이 똑같은 표정으로 펄쩍 뛰고 있었다. 옆에 선 어머니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쏟아진 음식을 주워 담았다. 사실이었다. 그 순간 제정신을 가지고 있던 야구 팬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7차전을 마무리하는 순간 모습이었다.

7살 소년이던 내게 최동원은 그렇게 다가왔다. 말 그대로 거인이었다.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동안 5차례 마운드에 등장한 투수. 그 가운데 4차례가 선발 등판이었고 3차례 완투승을 거뒀다. 시리즈 4승을 혼자 기록했다. 사실이라기보다는 만화에 가까운 현실, 눈으로 보면서도 안 믿기는 장면이었다.

그날 이후 매일 골목길엔 고무공을 던지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모두 자기가 ‘최동원’이라고 주장했다. 그걸 증명하려고 사인펜으로 옷에 ‘최동원’을 새겼다. 가죽 글러브에 쓰인 이름도 죄다 ‘최동원’이었다. 당시 최동원은 모든 아이들의 영웅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1984년 마운드 위 최동원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세상사에 대체로 시들해질 때가 되어간다.

그런데 안 변한 게 있다. 7살 그 시절 내 영웅 최동원. 아직도 그가 공 던지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소년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다시 느껴진다. 이제 영웅이 갔다. 하늘에서라도 그의 투구가 계속되길….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1-09-1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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