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에 무슨 일이…
13일 밝혀진 고리 원전1호기의 사고는 국내 원자력발전의 안전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비상용 발전기가 작동이 안 된 것도 문제지만 고장을 숨기려고 보고하지 않은 것은 더 큰 잘못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원전은 어떤 사정으로 발전을 중지하더라도 원자로에 열이 남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냉각수를 공급해야 한다. 천천히 원자로를 식혀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냉각수를 원자로에 공급하기 위한 외부 전원 공급이 끊기고, 이런 경우에 대비한 비상용 발전기조차 가동되지 않았다.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지만 섭씨 300도에 이르는 원자로에 잔열 제거 설비가 작동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원자로 내 온도가 수천도까지 상승, 노심까지 녹아 버려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이중, 삼중의 원전 안전시스템을 갖췄다고 장담한 전력 당국과 한국수력원자력은 그저 ‘말’뿐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간사는 “수백 차례의 안전성 논란에도 전력 당국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면서 “이런 원전은 작은 사고로도 우리나라 전체를 방사능으로 덮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고장은 계획예방 정비로 가동을 중단한 지 6일째가 돼 원자로 온도는 37도 정도여서 안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고장과 보고 누락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 안전의 대안을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라면서 “원전 근무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기계를 살필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과 함께)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경 한양대 원자력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원전 운영에 지나치게 경제논리를 덧입히면 부품 교체시기를 늘리거나 인력 감축으로 인한 무기력감 등으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원전의 안전이 중요한 만큼 전력 당국은 안전 부문에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8년 가동을 시작한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1호기는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비를 아끼겠다며 설계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이어서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왔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2012-03-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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