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현장서 4㎞ 떨어진 동물병원 찾아 세 차례 처방 거절당하자 흉기로 위협 원장·간호사, 문 잠그고 신고하자 도주 수색 중이던 경찰과 5분간 격투 벌여
‘트렁크 살인’의 피의자 김일곤(48·전과 22범)이 범행 8일 만인 17일 경찰에 붙잡혔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척수장애 3급 판정을 받고 매달 66만원의 복지수당을 받아 온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차량과 휴대전화만 훔치려고 했는데 (여성이) 화장실에 간다고 한 뒤 도망치려고 해 홧김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 “과거 식자재 납품 일을 할 때 미수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마트 주인들이 여성이었다”며 평소 여성에 대해 가져온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합뉴스
당당히 얼굴 들고…
3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공개수배됐다 붙잡힌 전과 22범 김일곤(앞줄 가운데)이 17일 얼굴을 든 채 서울 성동경찰서로 들어가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잘못한 게 없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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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장소는 김씨가 지난 11일 주씨의 시신을 트렁크에 실은 차량에 불을 지른 장소인 성동구 홍익동의 한 빌라에서 4㎞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회색 반소매 티셔츠에 파란색 면바지 차림을 한 김씨는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인근 S동물종합병원을 세 차례 찾아가 “무게 10㎏ 정도인 개를 안락사시킬 약을 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하자 복대에 숨겼던 흉기로 수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한 뒤 도주했다. 김씨는 병원에서 1㎞ 떨어진 지점에서 병원 측의 112 신고를 듣고 수색 중이던 성수지구대 경찰관 2명과 시민들에게 제압당해 검거됐다. 김씨는 잡힐 때 길이 28㎝의 독일제 칼 두 자루와 문구용 커터칼 1개를 갖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9일 주씨를 납치한 후 천안 두정동의 한 골목길에서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진술에 따르면 그는 그날 낮 2시쯤 자신의 투싼 차량 운전석에 탑승하는 주씨를 밀치고서 목 부분을 눌러 제압했다. 힘을 잃고 쓰러진 주씨가 곧바로 의식을 되찾자 칼로 계속 위협한 채 한 손으로 운전하며 5분 만에 마트를 빠져나왔다. 20분 정도 운전해 두정동을 지날 때쯤 주씨가 ‘용변이 급하다’며 차에서 내려 도주를 시도하자 김씨는 그를 다시 조수석으로 끌고 와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사흘간 김씨는 트렁크에 시신을 싣고 부산, 울산, 강원 양양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김씨는 경찰에서 “(주씨) 신분증을 보니 집이 경남 김해기에 인근에 묻어 주려고 부산에 갔다”고 말했다. 잠은 차에서 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극도로 흥분된 상태라 정확한 범행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은 약속을 안 지킨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범행 이후에도 성동구 일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유와 안락사 약을 사려고 한 목적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 39분쯤 성동경찰서로 이송된 김씨는 살해 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나도 살아야지”라고 소리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살해 후 여성의 시신을 훼손한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를 가졌을 수 있다”며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여성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김씨를 검거한 성수지구대 경찰관 2명을 1계급 특진시킬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5-09-1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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