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홍보·경제 활성화 효과 vs. 단체장 생색내기·한건주의쌈짓돈 모아 4만명분 밥짓는 ‘가마솥’ 제작…감자·옥수수 삶고 ‘방치’
세계 최고를 향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기네스북 등재 도전 열풍이 뜨겁다.기네스북 등재를 통해 도시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효과적이란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네스북 등재 실패로 인한 예산낭비도 자주 발생하고, 단체장 ‘치적 쌓기용’이란 비판도 일고 있다. 기네스북 등재 후에도 관리 부실 등으로 ‘계륵’같은 존재로 전락한 사례도 없지 않다.
◇ 지자체들 ‘세계 최대’ 기록에 앞다퉈 도전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난계 박연의 고향인 충북 영동군은 2010년 2억3천만원을 들여 울림판 지름 5.54m, 지름 6.4m, 너비 5.96m, 무게 7t 규모의 대형 북을 제작했다.
영동군은 이 북의 이름을 소망과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북이라는 의미에서 ‘천고’(天鼓)라고 지었다. 이듬해 영국의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로 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북(Largest Drum)’으로 인증받았다.
그러나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이 북은 보관시설없이 난계 사당 앞 임시보관소에서 4년간 방치되다 지난해 새로 지은 국악체험촌의 집(고각)에 겨우 자리잡았다.
울주군은 2011년 온양읍 외고산 옹기 마을에 세계 최대 옹기를 전시했다. 이 옹기 역시 2011년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에서 세계 최대로 인정받았다.
수직 높이 223㎝, 옹기 입구 둘레 214㎝, 최대 둘레 517.6㎝, 바닥 둘레 285㎝, 옹기입구 지름(외경) 69.4㎝에 이른다.
기네스에 옹기의 심사기준이 따로 없다보니 이 옹기는 ‘가장 큰 토기 단지(Largest Earthenware Pot)’의 최소 사양조건을 수직 높이 2m로 하는 인증 타이틀을 새로 만들어 심사를 통과했다.
이 옹기는 울주외고산옹기협회가 5번의 실패를 거친 후에 6번째로 성공한 것이다. 전국 최대 옹기 집성촌인 외고산 옹기마을을 홍보하고 전통옹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옹기산업의 부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기획됐다.
◇ ‘세계 최고라면…’...일회성 행사로 예산낭비 사례 많아
충남 공주시는 2010년 세계대백제전 당시 인절미로 기네스북에 도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떡을 만들겠다는 야심에서다.
주민과 관광객 1천여명이 참여해 길이 2천10m의 인절미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도전했으나, 인절미가 중간에 끊어져 기록 달성에 실패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참가자들과 관광객들은 중간에 끊어진 인절미를 나눠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충남 태안군 이원면의 2.7㎞짜리 ‘희망벽화’는 2009년 준공 당시 기네스북 등재가 추진됐으나 사업 중개인이 기네스협회에 영향력이 없는 인물로 드러나 중단됐다.
결국 6년여의 세월이 흐르면서 벽화의 페인트는 바래고 그림도 희미해진 채 방치돼 있다.
당시에는 세계 최장 벽화라는 소문과 기네스북 등재 추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렸지만, 지금은 발길이 거의 끊긴 상태다.
외부 시설이어서 별도의 유지비용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빛바랜 벽화를 준공 당시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실정이다.
대구에서는 관광 시설물은 아니지만, 최대 길이로 만든 김밥이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된 적이 있다.
대구 수성구가 2013년 개최한 ‘수성페스티벌’의 부대행사로 먹거리 밀집지역인 들안길에서 인근 상인들과 길이 1천20m의 김밥을 제작했다.
주로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들안길을 ‘1020세대’인 젊은층들도 많이 올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김밥 길이를 ‘1천20m’로 정했다.
그러나 실제 돌돌만 김밥은 1천30m였고, 이는 2007년 인천 계양구에서 만든 길이 1천4m의 김밥을 제치고 국내 최장 김밥으로 남았다. 이 이벤트는 그해 일회성으로 끝났다.
2008년 부산 자갈치축제때 세계 최대크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회접시’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길이 5m, 너비 3.5m로 최대 100인분의 회를 담아 축제에 사용한 이 접시는 2011년부터 축제가 초대형 회비빔밥을 만드는 행사로 바뀌면서 ‘낡은 유물’로 전락했다.
강원 양구군도 2009년 양구읍 중앙로에 조선시대 해시계를 재현한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로 기네스북에 올렸다.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때(1434년) 제작된 실제 해시계보다 20배가량 큰 지름 4m, 높이 2m로 제작됐다.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影針)은 순금(2kg)과 금도금(2.3kg)으로 만들었다. 이를 떠받치는 4개의 청동 구조물은 청룡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당시 기네스 등재를 위해 무려 1억600만원을 한국기록원 대표에게 줬으나, 이 대표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면서 등재 비용이 과도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충북 괴산군은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이유로 2005년 군민 성금 2억3천만원과 군비 2억7천만원 등 총 5억원을 들여 대형 가마솥을 만들었다.
둘레 17.85m, 지름 5.68m, 높이 2.22m로 솥뚜껑을 포함한 평균 두께만도 7㎝다.
군은 당시 가마솥을 제작하기 위해 군민 모금 운동까지 벌였고, 이 가마솥으로 ’4만여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다‘고 대대적인 홍보도 했다.
솥은 감자와 옥수수 몇 번을 삶고 나서 운명을 다했다. 솥이 워낙 크고 두꺼워 밥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은 그 후 이 가마솥을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외국에 더 큰 가마솥이 있는 사실이 알려져 중단했다.
최경지 강원 양구군의원은 “기네스 등재도 인터넷으로 하면 무료인데 억대 비용을 들인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네스북 등재가 일회성 이벤트나 단체장의 치적 쌓기가 아닌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승현 전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는 지자체장들의 조급증이 문제”라면서 “제대로 시민에게 기억돼야 재선에도 성공할 수 있고 업적으로도 남길 수 있는데, ’세계 최대'라는 수식이 붙은 기네스 기록을 그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히 마땅한 정책이 없는 지자체장들이 이런 행정력 낭비 행위를 일삼는다. 시민은 일회성 이벤트를 벌인다고 해서 그 지자체장을 훌륭한 인물로 기억하지 않는다”면서 “언론 노출빈도가 적더라도 제대로 된 정책과 행정을 보여줘야 의미있게 기억된다. 오히려 기네스에 집착하는 행정은 본인의 위상을 깎아먹고 예산낭비만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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