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 국제결혼의 또 다른 희생양
한국에서 결혼이주민으로 살다 베트남으로 귀환한 여성 뜨티무어이(왼쪽)가 지난 8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아들 홍대준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부모에게 등을 떠밀려 2006년 무어이와 국제결혼한 한국인 남편은 대준군이 태어났는데도 모자를 무관심하게 대했다. 그러다 모자가 2009년 베트남 친정을 방문한 직후 연락을 끊었다. 별안간 아버지와 연이 끊긴 채 베트남에 버려진 대준군은 관련 서류를 마련할 수 없어 현지에서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불안정한 체류를 이어 가고 있다.
허우장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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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지 언론 뚜오이쩨는 5년 전 베트남에서 무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사는 국제결혼 자녀들의 실태를 다루며 이런 표현을 썼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한·베 아동)이었다. 남편과 시댁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베트남 여성들은 자녀를 데리고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이를 증명할 서류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실거주지인 베트남에서조차 이들은 무등록 외국인으로 숨죽인 채 살고 있다. 어느 국가에서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아이들은 어른의 필요로 만들어진 중개 국제결혼의 희생양이다.
뚜오이쩨는 2014년 8월 허우장시에 사는 홍대준(13)군의 사연을 소개했다. 베트남 국적이 없어 8살(베트남 취학 연령은 6세)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방치됐다는 이야기였다. 엄마 뜨티무어이(32)는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 생활 중 아픈 친정아버지를 잠깐 보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왔다가 강제로 ‘귀환여성’이 돼 버렸다. 귀국편 비행기표를 보내 주기로 한 남편과 시댁이 모두 연락 두절됐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학교에 다니려면 현지에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버지의 동의서와 기본적인 증명서들이 필요하지만 갑작스레 버려진 모자에게 그런 서류는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벌어야 하는 엄마는 도심에 나가 일자리를 구했고 대준군은 홀로 외가에 맡겨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홍대준군은 한국인이지만 이를 증명할 서류는 2015년 1월 15일자로 만료돼 버린 여권이 유일하다. 지난 8월 서울신문과 만난 대준군이 한국 여권을 들고 있다.
허우장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허우장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5년 전인 2014년 8월 8살이 되도록 학교에도 가지 못한 대준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한 베트남 일간지 뚜오이쩨의 기사.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이 아이들은 기초적 복지와 의료권에서 소외돼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가 지난해 베트남 거주 귀환여성과 한·베 아동 301가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아동의 55.8%가 미등록 체류 상태였다. 귀환여성 가운데 42.7%가 자녀를 뒀고 이 중 87.4%가 자녀와 함께 귀환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베 가족 해체 자녀는 최소 3858명이다. 전체 국제결혼 이혼 부부 자녀의 수는 최소 1만 2281명으로 조사됐다.
허우장·껀터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9-09-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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