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목소리 전달한 男번역가 “‘범죄 VS 노동’ 이분법 너머 현실 봐야”

성노동자 목소리 전달한 男번역가 “‘범죄 VS 노동’ 이분법 너머 현실 봐야”

이슬기 기자
입력 2022-01-27 17:38
수정 2022-01-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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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사회 교사, 대학서 교육학 가르치는 이명훈씨
폭력, 협박 시달린 지인에 성노동 주제에 관심
“매춘을 노동으로 본다는 것, 좋은 일터라는 말 아냐
형법 넘어 상법·노동법 망라한 포괄적 입법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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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성노동자 여성이 쓴 책 ‘반란의 매춘부’를 번역한 이명훈씨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2. 1. 25 박윤슬 기자
영국 성노동자 여성이 쓴 책 ‘반란의 매춘부’를 번역한 이명훈씨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2. 1. 25 박윤슬 기자
영국의 성노동자인 두 여성 몰리 스미스와 주노 맥의 저작 ‘반란의 매춘부’(오월의봄)가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책을 번역한 이는 전직 중·고교 사회 교사이자 현재 대학 강단에서 예비 교사들을 가르치는 이명훈(38)씨. 이씨를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책은 ‘반성매매’와 ‘성노동론’ 같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을 넘어 성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보자는 취지로 쓰여졌다. 지인들과의 스터디를 통해 책을 먼저 접했던 이씨의 제안으로 한국 출간이 이뤄졌다. 이씨가 성노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성노동에 종사했던 지인들이 폭력·협박에 시달린 경험을 마주하면서부터다. 그는 “가장 열악하고 낙인찍힌 곳이지만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자리일 수도 있는 성노동이 되도록 덜 폭력적이고 덜 억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남성 구매자, 여성 판매자’로 철저히 젠더화된 성매매 시장에서 성노동자의 글을 남성이 번역했다는 것에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도 컸다고 한다. 한 때 필명 출간도 고려했다는 그는 “단지 성구매를 하지 않겠다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만이 성매매 문제 해결에 대한 남성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제도, 문화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노동자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책은 범죄 혹은 노동이라는 양극단 속 정작 매춘부의 삶,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지워졌다고 말한다. 이씨는 “매춘을 노동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성구매자의 성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성산업이 좋은 일터라는 말과도 거리가 멀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매매 문제의 해법을 위해 범죄화나 비범죄화, 구매자는 처벌하고 판매자는 처벌하지 않는 이른바 ‘노르딕’ 모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권력에 의한 단속을 강조하게 되면 당장 성노동을 하면서 개인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성노동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부차적으로 여겨지게 돼요. 형법적 변화에 갇히지 말고, 성노동자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상법, 노동법 등을 망라한 포괄적인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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