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카드결제 사양합니다”… 20㎏ 술통 멘 맥주보이 올림

“청소년과 카드결제 사양합니다”… 20㎏ 술통 멘 맥주보이 올림

입력 2017-06-12 23:02
수정 2017-06-1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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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경기 30분 전부터 판매 시작

시급 8000원이지만 고강도 노동
카드 결제땐 1층 매장 다녀 와야

함성 터져 나오면 팬으로 돌아가
지난 11일 KBO리그 LG-SK 경기가 펼쳐진 잠실구장에서 20㎏짜리 맥주 통을 멘 ‘맥주 보이’ 강일원씨가 무더위 속 관중석을 누비며 맥주를 팔고 있다.
지난 11일 KBO리그 LG-SK 경기가 펼쳐진 잠실구장에서 20㎏짜리 맥주 통을 멘 ‘맥주 보이’ 강일원씨가 무더위 속 관중석을 누비며 맥주를 팔고 있다.
“경기장에서도 청소년들이 어른인 척 맥주를 주문합니다. 이상하다 싶으면 신분증을 요구하죠. 놓고 왔다고 하면 판매하지 않아요.”

30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11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잠실 야구경기장에서 만난 ‘맥주 보이’ 강일원(24)씨는 이렇게 말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동식 맥주 판매원은 모두 8명이다. 활동 반경이 꽤 넓은 셈이다. 보통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 7회말까지 일한다. 대학생인 강씨는 일을 한 지 4주째 접어들었다.

관중석 맥주 판매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허용된 장소에서 주류를 팔아야 한다’는 현행법상 금지 대상이었다. 하지만 야구 마니아들의 거센 항의에 결국 국세청은 관련 고시와 규정을 개정해 허용했다. 한 팬은 “1년을 넘긴 요즈음 야구장 문화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절로 흐를 만큼 따가운 햇살 속에 황급히 좁다란 계단으로 그를 뒤쫓아 취재하는 동안 몇 번이나 울타리에 부딪쳐 넘어질 뻔했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LG-SK 경기를 앞두고 맥주 주문이 밀려들었다. 강씨는 플라스틱 컵에 맥주 150잔을 따를 수 있는 20㎏짜리 통을 메고 거침없이 뛰어다녔다. 시급 8000원을 받는 강씨는 “최저시급(6470원)보단 높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110잔 이상 팔아야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110잔을 팔면 1000원, 120잔을 팔면 2000원을 추가로 받는 식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평균 100잔쯤 팔린다고 한다. 컵이 모자라거나 카드를 받을 때마다 1층 매장을 다녀와야 한다. 이날도 1시간 사이에 다섯 차례를 왕복했다. 강씨는 “언젠가 맥주를 따르다 호스에 남은 거품을 비싼 가방에 흘려 진땀을 흘렸는데 다행히 세탁비만 조금 물고 넘어갔다”며 활짝 웃었다.

관중들은 시원한 생맥주를 즐기며 경기에 흠뻑 젖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온 스콧(40)은 “미국 야구장에서도 맥주와 핫도그를 판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쉽지만은 않은 일을 꾸준히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야구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며 또 웃었다. LG의 잇단 득점으로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씨도 그 순간만큼은 발걸음을 멈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한 명의 팬으로 돌아갔다.

글 사진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2017-06-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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