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비핵화·6자회담’ 강조, 北 ‘전통적 혈맹’ 부각
정전협정 체결일(27일)을 앞두고 25일 평양에서 성사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의 만남은 장기간 지속된 양국의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했다는 의미를 갖는다.북한은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올해 2월에는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중국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중국 지도부가 시진핑(習近平) 체제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던 때였다.
중국이 제3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동참, 중국 내 북한은행들의 외환거래 중단조치 등의 ‘강경조치’를 잇따라 취한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만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가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5월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을 계기로 또다시 전통적인 우방을 챙기는 모습을 연출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이번 정전협정 체결일 행사에 최고위급 정치국원이라고 할 수 있는 리 부주석을 보낸 것 역시 관계회복을 위한 후속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 지도부의 방북은 지난해 11월 리젠궈(李建國) 정치국원 이후 8개월 만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리 부주석은 이번 방북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중·조(북)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관계”라며 전통적인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혈맹관계’는 최근들어 중국 정계나 학계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정작 리 부주석이 김 제1위원장을 만나 전달한 중국 지도부의 대북메시지는 ‘북한 달래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체로 비핵화에 발언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리 부주석은 김 제1위원장과 만나 “오늘날의 평화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고 거론한 뒤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 있는 중국은 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반도의 안정, 대화·협상을 통한 유관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6자 회담 재개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해나가자며 거듭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리 부주석은 김영남 위원장과 만나 자리에서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했다.
중국이 정전협정 기념일에 북한에 최고위급 인사를 보낸 것은 북한의 체면을 세워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이 부담스러워 하는 비핵화 주제를 김 제1위원장 면전에서 꺼낸 것은 일종의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리 부주석의 이런 발언에 김 제1위원장은 직접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이를 위해서는 안정된 외부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비핵화의 전제조건은 ‘미국의 침략위협’ 제거와 같은 외부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결국 북한 달래기와 압박전략으로 보이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북한의 핵무장과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를 방지하면서도 ‘혈맹’이라는 역사적 고리를 부정할 수 없는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이날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중국의 대표적 관영매체에서는 김 제1위원장과 리 부주석의 회견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또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매체들이 부각한 리 부주석의 ‘혈맹’ 발언 등은 중국매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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