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국 사회부 기자
2012년 1월 세상에 첫선을 보인 ‘미생’이 최근 한 케이블 방송사의 드라마로 재탄생하면서 원작의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말 그대로 ‘미생 신드롬’이다.
바둑에서 돌의 생사가 불완전한 상태를 미생이라고 한다. 완전히 죽은 ‘사석’(死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상태에서도 죽지 않는 완전한 생존 상태인 ‘완생’(完生)도 아니다. 따라서 미생의 목표는 완생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대한민국 20~40대의 팍팍한 삶을 바둑으로 풀어 나간다. 바둑은 상대의 수를 읽으면서 자신의 수를 감춰야 하는 싸움이다. 원작과 드라마에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바둑판으로 놓고 인턴사원부터 계약직 사원, 정규직 사원, 대리, 과장, 부장까지 각각의 위치에 있는 모두를 미생으로 묘사한다. 인턴에게는 계약직 사원이, 계약직에게는 정규직이, 대리에게는 과장이 완생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완생을 꿈꾸며 경쟁한다. 때로는 상사를 비롯한 직장 내 ‘갑’(甲)들의 횡포에도 소주 한 잔에 울분을 씻어 낸다.
이런 작품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걸까. 뒤늦게 미생에 빠진 팬으로서 내린 잠정 결론은 ‘공감’이다. 컴퓨터 활용 능력 2급이 자격증의 전부인 고졸 인턴, 사내 정치라고는 할 줄 모르는 만년 과장, 그런 과장 밑에서 묵묵히 일만 하는 대리 등 작품 속 인물이 겪는 고민과 갈등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을’(乙)들을 대변하고 위로한다.
결국 미생 신드롬에는 심각한 취업난과 노동자에 대한 비인격적인 대우, 여성에 대한 차별 등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3일. 전국에서 고3 수험생 등 59만여명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이들은 대학 진학을 놓고 울고 웃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학생 대부분에게 완생은 정규직 직장인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이 다시 펼쳐진다. 같은 날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하며 미생인 이들을 사석으로 만들었다. 오늘 밤 미생 시청에는 술이 필요할 것 같다.
psk@seoul.co.kr
2014-11-15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