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제로’ 선언하고 플루토늄 생산 지속…미국도 의심
2030년대 ‘원전 제로’를 선언한 일본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계속하기로 해 파문이 일고 있다.일각에서는 일본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을 계속함으로써 ‘잠재적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4일 오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주재한 ‘에너지 환경회의’에서 중장기 에너지 정책인 ‘혁신적 에너지·환경 전략’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일본은 2030년대 ‘원전 제로’를 목표로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원전 수명 40년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원전의 신증설을 하지 않되 수명 40년이 되지 않은 원전 가운데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안전을 확인한 원전은 재가동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지속해 아오모리(靑森)현의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공장 가동을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 제로를 추진할 경우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공장 가동을 멈출 경우 아오모리현이 롯카쇼무라에 보관돼 있는 약 2천900t의 사용후 핵연료를 원래의 생산처인 각 원전으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롯카쇼무라의 가동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 정부는 롯카쇼무라가 사용후 핵연료를 전국의 원전으로 반송하면 당장 저장할 장소가 없어 원전의 가동이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런 방침에 의혹을 제기했다.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로 플루토늄 추출을 지속하는 것은 일본이 잠재적인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저의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규슈대의 요시오카 히토시(吉岡齊) 부학장(과학사)은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핵연료 재처리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플루토늄이 계속 쌓인다”면서 “외국은 사용처가 불분명한 플루토늄의 재고 증가를 의심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일본을 의심하고 있다. 원전 제로를 천명한 일본이 핵무기로 전용 가능한 플루토늄 추출을 계속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으로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의 원자력협정에서 원전의 연료라는 전제하에 플루토늄 추출을 용인했지만, 일본이 원전을 가동하지 않겠다면서 플루토늄 생산을 계속할 경우 이란 등에 플루토늄 생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지난 12일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총리보좌관을 급거 워싱턴에 보내 상황을 설명했으나 미국의 이해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지난 6월 원자력기본법을 고쳐 원자력 이용에 ‘안보 목적’을 추가해 핵무장의 길을 열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본은 이미 원자폭탄 1천∼3천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30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원전 제로 정책을 제시해놓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지속하겠다고 나섬으로써 ‘핵보유 의지’ 논란을 불렀다.
일본의 정치권이 우경화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재무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키울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은 자민당의 총재 선거(이달 26일) 입후보자들이나 일본의 차세대 지도자로 거명되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의 개정과 무장 강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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