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

입력 2012-05-27 00:00
수정 2012-05-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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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제주도에 가면 KAL 호텔에 묵자고 말하곤 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감귤도 따고 회도 먹으면서 3박 4일을 보내다 오는 거라고. 그때 제주도에 신라나 롯데 호텔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는 이름이라도 들어보았던 KAL 호텔이 가장 좋은 호텔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 무렵에 부모를 잃고 삼촌과 고모들을 모두 키운 다음에야 늦장가를 갔던 아버지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고, 당연히 비행기도 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제주도에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제주도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아팠던 어머니가 자주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린 2남 1녀를 건사하면서 병원비를 대느라 여행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다 자란 자식들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제주도 여행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 거다.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아름다운 오아시스의 환상에 기대 험한 사막을 건넜을 것이다.

아버지의 49재가 있던 날, 우리 가족은 자동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양평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몸이 불편했지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함께 모셔가기로 했다. 양평에는 아버지를 모신 수목장이 있었다. 수목장은 화장한 재를 나무 밑에 묻는 장례 방식이다. 초등학생 조카는 청량한 소나무 향을 맡으며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제 아빠에게 물었다. “그럼 엄마랑 아빠랑 삼촌이랑 할머니랑 고모랑 나중에 다 여기 모이는 거야?” 형이 픽 웃었다. “너도 올 거다, 임마.”

한참 나무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경치 좋은 식당 평상에 앉아 닭백숙과 닭죽을 먹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 먼저 항복을 선언한 조카는 따뜻한 6월 햇볕을 받으며 평상에 누워 졸고 있었다. 연한 가슴살을 찢어 어머니 밥그릇에 놓느라 바빴던 형수가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담엔 해장국 먹으러 갈까?” 평상에서 뒹굴던 형은 양평 해장국의 기원과 그 훌륭한 맛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가족 여행이었다. 호텔에도 가지 못했고 비행기도 타지 못했지만,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짧으나마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 년에 몇 번이나 그런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저희 금방 다시 갈 게요.

이승영_ 아버지에게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죄송하다고 합니다. 내년에는 손자는 아니더라도, 며느리만이라도 보여드렸으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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