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드라마’ 없었던 카터 ‘프리랜서 외교’

‘1994년 드라마’ 없었던 카터 ‘프리랜서 외교’

입력 2010-08-27 00:00
수정 2010-08-2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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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꿈꾸었던 ‘프리랜서 외교’의 극적 반전 드라마는 없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은 미국 정부가 애당초 성격을 규정했던 말 그대로 ‘사적이고 인도주의적 임무’만을 수행한 여정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2박3일의 방북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씨의 사면을 받아내고 27일 곰즈씨와 함께 귀국길에 올랐지만,당초 예상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은 성사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번 방북은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미북 간 대결 전선이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미국 전직 대통령의 방문인데다,지난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일성 주석과의 평양 면담을 통해 대결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켰던 주인공인 카터 전 대통령을 다시 북한이 초청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국면의 반전도 예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주목받았다.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내놓을 ‘보따리’가 무엇인지를 모두가 주시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오히려 김 위원장은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왔을 때 명목상의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만나도록 하고,정작 자신은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향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의 면담과 관련해 북미 현안들을 논의했고 김 상임위위원장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에 관한 우리 공화국 정부의 의지를 표명했으며 특히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데 대해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또 카터 전 대통령은 박의춘 외무상,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 “조미(북미) 쌍무관계 문제와 6자회담 재개,조선반도 비핵화 실현 문제 등 호상 관심사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 만남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은 현안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인식은 살필 수 있었겠지만,김 위원장의 ‘육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카터 전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은 왜소해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김정일-카터 면담 불발’ 자체가 김 위원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잣대로 해석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채 지난 5월 초 방중 이후 불과 석 달만에 중국을 다시 전격 방문한 것 자체를 메시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당장은 대미(對美) 관계 개선보다는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나 ‘혈맹’인 중국과의 유대강화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북한 국내상황 관리가 더욱 시급한 현안이라는 얘기다.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권력승계와 관련된 행동으로 보는 분석과도 맞물리는 대목이다.

 물론 김 위원장의 카터 면담 외면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움직일 ‘지렛대’로서 카터 전 대통령의 전략적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고려됐을 수 있다.지난 1994년 김일성의 ‘카터 초청 외교’의 재판(再版)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여기에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미국 정책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미리부터 차단막을 쳤고,카터 방북의 정책적 영향력을 극구 통제하려 한 오바마 행정부의 일관된 입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의 ‘인질외교’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미국의 완고한 태도에 김 위원장은 예상 밖의 ‘미국 전직 대통령 무시’라는 강수로 맞대응하는 대외적 행보를 보이면서,오히려 미국 전 대통령의 ‘청원’을 받고 ‘불법 입국범’을 특사로 석방하는 ‘통 큰 아량’을 선전하는 대내적 효과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는 듯 미 국무부는 곰즈씨를 대동하고 카터 전 대통령이 귀국길에 오르자 내놓은 환영 논평에서 거듭해서 “카터 전 대통령의 여행은 오로지 곰즈씨를 데려오기 위한 개인적,인도주의적,비공식적인 임무였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정부 초청으로 방문했고,미국 정부는 이번 방북을 제안하거나 주선하지 않았다”며 이번 방북의 비(非) 정치적.정책적 성격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번 방북은 또 한 차례 한반도 위기의 중재자 역할을 꿈꾸었던 카터 전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북.미 양측의 입장과 태도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키는 사건으로 기록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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