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패도 돼요?” 트랜스젠더 혐오 여론에 고개 숙인 동물권단체 노조 왜 [넷만세]

“여자는 패도 돼요?” 트랜스젠더 혐오 여론에 고개 숙인 동물권단체 노조 왜 [넷만세]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5-01-18 18:12
수정 2025-01-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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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동물권행동 카라’ 노조가 공식 엑스 계정에 올렸다가 삭제한 게시물. 카라 노조는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의 게시물을 인용한 이 게시물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삭제하고 사과했다. 카라 노조 엑스 캡처
지난 16일 ‘동물권행동 카라’ 노조가 공식 엑스 계정에 올렸다가 삭제한 게시물. 카라 노조는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의 게시물을 인용한 이 게시물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삭제하고 사과했다. 카라 노조 엑스 캡처


동물보호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 노조가 “견디지 말고 다 패버립시다. 함께해요”라는 게시물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사과하고 이를 삭제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을 옹호하다가 벌어진 일인데 이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다수의 트랜스젠더 혐오 분위기 확산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카라 노조는 지난 16일 공식 엑스(옛 트위터)에 이같은 글과 함께 한 동물 캐릭터가 “꼭 짱이 돼야지. 꼭 짱이 돼서 맨날 싸움만 하고 애들 다 패버릴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 만화 이미지를 올렸다.

카라 노조는 그러면서 전날 장 전 의원의 엑스 게시물을 인용했다. 장 전 의원은 “여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성 정치인의 일을 폄하하는 기현상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라는 글을 올렸는데 카라 노조는 이같은 글에 “패버립시다”라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장 전 의원에게 힘이 돼주려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카라 노조는 이 발언 직후 이른바 ‘트페미’(트위터상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들의 집중적인 비난 포화에 맞닥뜨렸다. 애초에 장 전 의원의 한숨 섞인 메시지는 최근 트랜스젠더 혐오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페미니스트들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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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메리퇴진 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 - 다시 만들 세계’에서 시민들이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2024.12.24 뉴시스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메리퇴진 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 - 다시 만들 세계’에서 시민들이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2024.12.24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이후 이에 저항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체포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2030 여성의 집회 참여 비율이 눈에 띄게 높은 점이 주목받았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이 엉뚱하게도 생물학적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해 트랜스젠더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 간의 갈등으로 최근 온라인상에서 급격히 표출되고 있다.

일례로 18일 엑스에는 집회 현장에서 받았다는 스티커 사진 한 장이 퍼졌다. 해당 스티커에는 ‘그만하라고 했다. 동지들 부른다고 했다’는 문구가 쓰여 있고 그 아래엔 ‘우리는 함께 소리를 내며 연대한다’는 등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에 더불어 ‘노동자’, ‘장애인’, ‘농민’, ‘젠더 퀴어’, ‘연대 시민’을 각각 나타내는 5가지 픽토그램도 그려져 있었다.

대형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 ‘더쿠’에는 이 게시물을 퍼온 글이 올라왔는데 더쿠의 글쓴이는 “여자들의 연대는 바라면서 연대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2030 여자들의 이름은 지우는 게 너무 어이가 없다. 끼고 싶지도 않지만, 여성들 지울거면 응원봉도 빼주시길”이라고 썼다. 이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특정 집단으로 구분지을 때 노동자, 장애인 등과 함께 ‘2030 여성’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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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한 엑스 이용자가 집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참석자로부터 받았다는 엑스에 올라온 스티커. 이를 두고 일부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체포 시위를 주도한 2030 여성이 ‘연대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지워졌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엑스 계정 ‘paradoxcho’ 캡처
18일 한 엑스 이용자가 집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참석자로부터 받았다는 엑스에 올라온 스티커. 이를 두고 일부 온라인 여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체포 시위를 주도한 2030 여성이 ‘연대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지워졌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엑스 계정 ‘paradoxcho’ 캡처


특히 응원봉 픽토그램 아래에 적힌 ‘연대 시민’이라는 포괄적인 명칭은 보다 구체적인 ‘2030 여성’에게 응당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때부터 각양각색의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모두 2030이거나 모두 여성인 것은 아니겠지만, 엑스와 여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를 2030 여성이 독점해야 마땅하다는 공통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대부분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온라인상의 이들은 최근 집회에서 젠더 퀴어가 부각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탄핵·체포 촉구 지지 집회 현장을 전한 일부 언론 기사 등에서는 2030 여성과 더불어 성소수자의 참여를 나란히 주목하기도 했는데,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한 줌’에 불과한 성소수자가 집회를 ‘주도한’ 2030 여성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온다.

트랜스젠더에 적대적으로 변한 트페미와 일부 여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등이 앞장섰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채 끝났던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한 여론 악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온라인상에서는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페미니스트 진영이 양분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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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 촉구 집회에서 분홍색, 하늘색, 흰색으로 이뤄진 트랜스젠더 상징 깃발과 성소수자(LGBT)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깃발 등이 나부끼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엑스 캡처
지난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 촉구 집회에서 분홍색, 하늘색, 흰색으로 이뤄진 트랜스젠더 상징 깃발과 성소수자(LGBT)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깃발 등이 나부끼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엑스 캡처


“21대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 전 의원은 당시 국회에서처럼 지금도 차별금지법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 장 전 의원은 최근 트랜스젠더 혐오 분위기에 대해 지난 2일 “‘페미니스트는 사람 취급 안 해도 된다’는 말과 ‘트랜스젠더는 사람 취급 안 해도 된다’는 말은 모든 사람의 평등한 존엄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는 글을 올려 트랜스젠더를 비난·조롱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를 꼬집었다.

하지만 이에 비판적인 이들은 장 전 의원을 ‘정신적 트랜스젠더’, ‘(국회의원을 지낸) 기득권’ 등으로 폄훼하면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장 전 의원의 엑스 게시물에는 “여성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지 왜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냐”, “당신은 평생 가도 2030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등 비판 댓글이 쇄도한다.

‘동물권행동 카라’ 노조가 18일 올린 사과문. 카라 노조 엑스 캡처
‘동물권행동 카라’ 노조가 18일 올린 사과문. 카라 노조 엑스 캡처


카라 노조의 “패버립시다” 발언 삭제도 이같은 페미니스트들간 갈등에서 비롯했다.

카라 노조는 18일 사과문을 올렸다. 문제의 게시글을 썼다는 카라 활동가는 “의제와 맥락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남긴 글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표현을 가볍게 사용했고, 이로 인해 상처 입으실 대상에 대해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트랜스젠더와 장 전 의원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여자는 의제와 맥락에 따라서 패버려도 되는 존재인가. 동물에게도 그럴 거냐”, “카라 노조가 저지른 여성혐오에 대해 명확하게 다시 사과하라”, “이제는 동물보다도 여자가 밑이구나” 등 댓글로 비판을 계속했다.

애초 카라 노조가 “패버립시다”의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해 명시한 적은 없으나, 장 전 의원과 온라인상 다툼을 벌이던 이들 대부분이 페미니스트 여성이었기에 이들은 스스로 이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여성혐오’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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