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특허 여전히 ‘질보다 양’… 특허수지 갈수록 악화
한때 ‘짝퉁 공화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적인 ‘특허대국’으로 변신했다. 11일 특허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나 기업, 연구소가 특허청을 통해 출원한 국제특허는 1985년 23개에서 지난해 1만 412개로 엄청나게 늘었다. 27년 만에 452배나 성장한 셈이다. 특히 2000년대부터 지식재산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999년 855건에서 2000년 1573건으로 급증했다. 특허 건수만 따지면 우리나라는 세계 5위권으로 특허 강국에 해당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기술과 특허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늘면서 2000년대 이후 국제특허 출원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하지만 특허를 통해 돈을 벌거나 반대로 로열티를 내준 것을 정산한 ‘특허수지’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2010년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는 68억 9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7년(29억 2000만 달러 적자)보다 적자폭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홍국선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등 첨단산업의 수출이 늘면서 특허료 등 기술무역수지 적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우리 특허가 양적으로 크게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기술무역수지배율’은 2010년 기준 0.33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기술무역수지배율은 기술 수출액을 기술 수입액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기술경쟁력이 낮다는 뜻이다. 한국의 기술 수출액은 33억 5000만 달러로 수입액 102억 3000만 달러의 3분의1밖에 되지 않아 원천기술 보유에서 열세를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슬로베니아(0.49)와 그리스(0.52), 슬로바키아(0.66)보다도 낮다. 반면 일본은 4.60으로 한국의 14배에 이르렀고 미국도 1.45로 우리의 4.4배였다.
이를 반영하듯 전 세계 업계가 돈을 내고 반드시 써야하는 ‘표준특허’ 역시 빈약한 실정이다. 표준특허는 산업계 공식표준으로 지정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특허를 말한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막대한 로열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한 나라의 특허 경쟁력을 표준특허 건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경우 전체 등록 표준특허 514건(올해 6월 기준·이동통신 등은 제외) 가운데 한국 특허는 고작 3건(점유율 0.6%)뿐이다. 전통적 특허대국인 일본 273건(53.1%), 미국 142건(27.6%), 독일 31건(6.0%), 영국 24건(4.7%) 등과 비교하기조차 무의미할 정도다.
그나마 우리의 강점인 이동통신 분야가 속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T)에서는 전체 표준특허 2493건 가운데 우리 특허가 75건으로 3%대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강태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연구팀장(재료공학부 교수)은 “미국의 퀄컴처럼 전 세계 업체들로부터 수조원에 달하는 로열티 수입을 얻으려면 우리도 많은 표준특허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게 없다.”면서 “휴대전화와 TV, 컴퓨터를 팔아서 번 돈을 고스란히 기술 선진국에 갖다 바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보다 미래 쓰임에 연구의 중점을 두는 연구소나 대학 등도 특허의 내실이 빈약하기는 기업과 마찬가지다.
지식경제부가 2009년 국내와 해외의 특허 현황을 비교한 결과 국내 대학·연구소가 내놓은 총 특허 건수는 1만 4470건으로 미국(1만 8962건)에 크게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유럽(4302건)의 3배를 웃돈다. 하지만 특허의 경제적 가치를 반영하는 로열티에서는 이들에 크게 뒤진다. 한국 대학의 평균 특허 수익은 한 건당 3만 1880달러로, 미국(55만 6230달러)의 18분의1, 유럽(8만 9525달러)의 3분의1 수준이다.
심영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정부나 기업 모두 ‘일정 기간에 몇 개의 특허를 냈느냐’로만 연구 성과를 평가해 왔다.”면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전 세계를 뒤바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통신방식이나 전자태그(RFID)와 같은 혁신 기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2012-09-1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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